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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전해지던 박정희 전대통령의 만주군 혈서지원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발굴 공개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1월 4일, 최근 일본에서 입수한 혈서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사본을 공개하고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일인명사전 등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
홈지기
- 2009.11.05
- 19:14:16
- (*.43.142.31)
출처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59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주군 혈서지원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가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친일인명사전 등재를 추진하면서 그 후손과 논쟁을 벌이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최근 일본에서 입수한 박 전 대통령의 혈서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사본을 공개했다.
일본어로 발간된 만주신문 기사에는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군 군관학교 입학을 위해 보낸 지원 서류에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동봉한 사건을 소개했다. 또 편지에는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은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연구소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혈서를 쓰면서까지 간청한 끝에 1940년 4월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해 군사교육을 받고 2년 뒤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이어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편입한 뒤 1944년 일본 육사 27기로 졸업했다. 그해 12월 일본군 예비역 소위로 편입되면서 만주국군 보병소위로 임관하고 작전참모 등을 지내다 1년 뒤에는 중위로 진급했다.
연구소가 이번 자료를 공개하게 된 것은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가 지난 10월 28일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해 게재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후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본지가 흐려지고 정치 쟁점화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故)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에 설립돼 한일 과거사 청산 문제 등을 연구해 오다가 최근에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소위 ‘친일파’의 후손들의 거센 반발과 고소가 이어지고 있어 발간이 가까울수록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박전대통령 자신의 언행이 담긴 객관적인 원사료를 공개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 확대를 막고, 이성적인 토론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4370여 명의 친일 행적이 기록된 친일인명사전은 반민특위 해체 60년, 편찬위원회 출범 8년 만인 오는 8일 발간될 예정이다.
▲ ‘만주신문’ 1939년 3월 31일자(제공:민족문제연구소)
▲ 박정희 임시 육군 군인(군속)계. (제공:민족문제연구소)
홈지기
- 2009.11.05
- 19:14:59
- (*.43.142.31)
어이상실 ( 2009-11-05 16:28:48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03&newsid=20091105145004750&p=yonhap
음.. ( 2009-11-05 16:29:41 )
훗.. 일본군 장교만 한 게 아니죠... 해방되고는 공산당이 유리할 것 같을 때는 남로당에 가입했고,
그 후에는 동료들 다 불고, 혼자만 살아 남아서 반공한다고 난리 쳤죠..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에 도둑놈인데 참.. 왜 존경한다고들 난리인건지..
알고보니 ( 2009-11-05 16:31:39 )
어릴적에 세뇌당한게 억울할 정도로 짜증나는 인간이더군요.
대한민국에서 처녀 머리얹어주는 거 제일 많이 했다고 하죠.
그거 담당하는 실장이 따로 있었다고.
더러워...................
이거 ( 2009-11-05 16:37:00 )
덮으려고 장동건이고 고소영이고 갖다 붙이고 발악을 해대고 있구만요. 등신들.
얼씨구 ( 2009-11-05 16:45:57 )
글쎄요 업적으로 봤을때 현재 한국경제발전에 가장 기여도가 크다는건 누구나 인정할겁니다..
처녀머리 어쩌구는 현 조선일보 일가 *일영을 말하시는게 맞습니다... 박통시절 박통을 대통령
형님이라 부를수있는 사람이었고. 박통도 밤의 대통령이라 불렀을정도의 기회주의자 였습니
다.. 방*영이 술먹을때 박통을 꼭불렀다죠..그담 전두환정권은 박일* 동생이 접수했구요.. 그렇
케 조선일보는 권력에 빌붓어 지금도 잘살고있습니다..
오늘 ( 2009-11-05 16:57:14 )
그래서 동건이형이 세일에 들어간 거군요.
얼씨구님 ( 2009-11-05 17:01:17 )
처녀머리 얹어주는 거 박정희 맞습니다.
제가 그 전직 채홍사 실장이 인터뷰한 기사 읽어봤거든요.
방씨도 박정희 못지 않아서
박정희가 낮의 대통령이 나라면 밤의 대통령은 방가 자네로군, 그랬다는 말이 있더라구요.
처녀머리는 박정희 맞아요. 방가는 밤의 여인네들 전문이었구요.
오죽하면 서울시내 여고, 여대생 뽑아올리는 담당이 따로 있었다고 했어요.
마음에 들면 두번도 부르고 하는데, 대부분 한번으로 그쳤고
그 당사자 아가씨와 부모들한테는 엄중한 입조심 경고와 돈이 오갔다지요.
그시기에 ( 2009-11-05 17:03:31 )
박정희라서 경제발전에 기여한 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 기회가 찾아온 시기였습니다.
독재를 개발드라이브에 쌈싸먹으려는 작태가 한심한 인간이죠.
박정희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실현하면서 경제개발을 했다면
경제발전이 더디 왔을 지는 모르지만 지금처럼 이런 듣보잡이 득세하는 세상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 2009-11-05 17:09:12 )
좀 있다 잠잠해지면
또 경상도 사나이가 멋있다느니
경상도 사투리가 점잖고 매력 있다느니
박정희가 심어 놓은 경상도 우월의식을 세뇌시키는 지역간 다툼을 재현하려는 글들 올라오고
그러면서
또 이명박 같은 이가 나타나고
우리가 남이가 이러면서
경제가 중요하니 어쩌고 하면서
한나라당 찍어야 한다는 당당한 목소리가 나옵니다.
점쟁이 아니어도 뻔한 시나리오가 줄줄 나옵니다.
며칠전만 해도 ( 2009-11-05 17:11:54 )
이 곳에 갑자기 그런 글들 줄줄이 올라왔죠.
아무리 박정희가 한 잘못된 일을 지적하는 글이 올라오고
기사니 평론이니 객관적인 글이 올라와도
저들에게는 보이는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눈과 귀가 있습니다.
역사에 배신자요 친일을 한 자의 아들이
당당하게 재판을 하자는 것도
다 저런 지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큰소리 치는 겁니다.
저들이 부끄러원 소리를 죽이는 세상이 와야
매국노의 아들놈이 부끄러워 조용히 살 것 입니다.
얼씨구야 ( 2009-11-05 17:12:45 )
대충, 어물쩡
......글쎄요 업적으로 봤을때 현재 한국경제발전에 가장 기여도가 크다는건 누구나 인정할겁니다..,,,
이 문장은 왜 넣었니?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
앞으로 ( 2009-11-05 17:15:20 )
매 페이지마다 이기사는 꼭 링크 걸어서
모두 볼 수 있도록 합시다.
친일인명사전을 출간할 때 까지...
어이상실 ( 2009-11-05 17:16:53 )
그러게나 말입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대한민국이 언제 대통령 잘뽑아서 이정도로 온겁니까
국민들이 알아서 해줬으니 이나마라도 가고 있는걸 모르고..
오히려 뽑아놓으니 뒷걸음질 치는 꼴이라니....
몇십년을 ( 2009-11-05 17:17:41 )
한국경제발전 가장 기여도가 크다
요 논리?로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고 그 권세를 누렸고 저말에 혹해서...또 따랐고...
지금까지 그랬다고 앞으로도 그럴거다 생각하나본데...아주 지긋지긋한...
이플 ( 2009-11-05 17:17:47 )
많이많이많이 퍼뜨려야겠어요..징그럽네요 이 기사 덥을려고 장동건 끌어다놓다니ㅏ 참
이런... ( 2009-11-05 17:35:39 )
이런 뉴스를 톱으로 보도해야하는데~~
언론 장악하려는 의도는 뭐~뻔한거지요~~~
펜 ( 2009-11-05 17:51:38 )
대통령이 아니라 지가 왕인 줄 알았죠.
저 아니면 한국 망할것처럼 굴고 저 혼자 다 해먹고.
본처는 시골에 쳐박아 두고 첩실 들여서는 그네같은 또라이나 낳아놓고.
DJ 누를려고 망국적인 지역감정 만들어 놓고.
저런 매국노쓰레기도 좋~다고 박수치고 울고불고 하는 등신들은 다들 뭔지 모르겠어요.
저 놈 아니었어도 한국은 넘치는 미국 원조(?) 등으로 어차피 발전했었을텐데 말이죠.
홈지기
- 2009.11.06
- 17:21:31
- (*.43.142.31)
법원 "사전 수록은 학문적 의견 자유 침해 아니다"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가 8일 공개하기로 한 `친일인명사전'에서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1864~1921)의 이름을 빼 달라는 취지로 법원에 제기된 가처분 신청이 모두 기각됐다.
서울북부지법 민사13부(서창원 부장판사)는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가 친일인명사전에 박 전 대통령의 이름을 싣는 것과 이 사전을 배포하는 것을 금지해달라고 낸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고 6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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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박정희에 관한 부분은 출생부터 사망까지 구체적 사실로 개념 지을 수 있는 주요 경력에 대해 서술하고 있고 참고문헌을 자세히 명시해 진위는 본안 소송으로 충분히 확인 가능할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또 "친일인명사전의 수록은 학문적 의견 개진 또는 표명에 가까운 것으로 이런 견해가 학문적 의견을 표명할 자유의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민사12부(배준현 부장판사)도 위암 장지연선생 후손과 기념사업회가 낸 게재 및 발행금지 가처분신청을 이날 기각했다.
재판부는 "친일인명사전에 장지연의 행적을 싣는 게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 장지연과 유족 등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기에 부족하다"라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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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53875&CMPT_CD=P0001
민족문제연구소는 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에 지원하며 일본제국에 충성을 맹세한 내용의 혈서를 썼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공개했다. 최근 일본에서 입수한 박정희 혈서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사본이다.
박정희 혈서설은 "1938년 5월경 학교 숙직실에서 만주군관학교 입학적령 20세에 걸려 고민하는 박정희가 혈서를 써서 편지와 함께 만주군관학교에 보냈다"는 문경보통학교 동료교사 유증선의 증언(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2>)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료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해당 기사에 따르면, 당시 문경공립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박 전 대통령은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했다가 연령 초과로 1차 탈락하자 포기하지 않고 지원 서류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와 채용을 간곡히 호소하는 내용의 편지를 동봉하여 1939년 군관에 재차 지원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만주신문>은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23)군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계원(係員)을 감격시켰다"며 박 전 대통령의 편지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편지에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라고 밝히는 등 만주군 임관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만주신문>은 이어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며 박 전 대통령의 두 번째 만주국 군관 지원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세 번째 시도 끝에 1940년 4월 신경군관학교 예과과정에 입학하여 군사교육을 받고 1942년 10월 성적 우수자로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 3학년에 편입하는 등 '꿈'을 이룬다. 박 전 대통령은 이후 1944년 12월 일본군 예비역 소위로 편입됨과 동시에 만주군 보병소위로 임관해 일제 패망 직전까지 만주군 중위로 활동했다.
지만씨, 배포금지 가처분신청 추가... 법원결정 따라 사전발간 무산될 수도
민족문제연구소는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가 지난 10월 26일 게재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후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본질이 흐려지고 정치쟁점화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이날 자료를 공개한다"며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가 나간 후 연구소에 끊임없이 욕설·폭언을 하는 전화가 끊이지 않아 업무에 지장을 받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 자신의 언행이 담긴 객관적인 원사료를 공개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 확대를 막고 이성적인 토론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박지만씨는 4일 서울북부지법에 게재금지 가처분신청에 배포금지 사유를 추가해 청구취지 및 원인 변경신청서를 제출했다.
법원이 지만씨 측의 결정을 받아들일 경우 인쇄가 이미 끝난 친일인명사전을 일반 대중에게 공개할 수 없게 돼 8일로 예정된 친일인명사전 국민보고대회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법원은 앞서 국민보고대회 전까지 심리를 끝마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최종 결정이 주목된다.
박정희 만주군 지원 '혈서설' 증거 공개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