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봄같은 날씨를 연출한 4월 8일
남편과 나는 경주로 향했다.
마침 학교에 행사가 있는 쉬는 날이었다.
대구에서 건천IC로 빠져나와
금척리로 향했다.
금으로 만든 자가 이 어딘가에 묻혀있다.
찾아보시라 ^^

돌무지 덧널 무덤이다.
개인적으로 돌무지 덧널 무덤은 더 반갑다.
왠지 흉노족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도 같고
도굴도 덜 되었을테니
그 시절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것 같아서....

요즘 문화재 안내판에는 관광자원번호가 적혀 있다. 심지어 펜션도 저 번호가 있더라는...

일제시대에 이 길이 생겼다고 하는데...
하필이면 금척리 고분을 가로지르며 지나간다. 그 와중에 훼손된 봉분도 있지 않았을지...

이 무덤은 모두 50여개나 된다.
혁거세왕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밀양박씨후손들은 필수로 이 곳의 조상님들을 찾아봐야할 것 같다. ^^
내물왕 수업할 때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박씨들 모두 손들어봐.
대부분 밀양 박씨들이다.
너희들은 김씨한테 망해서 다신 왕노릇 못해 ㅋㅋㅋ
(학생들이 와~ 하고 웃는다.)
옛날 옛날에
진시황이 흉노족 막을려고 세운 것이 뭐더라?
학생들이 만리장성이요...라고 대답한다.
그 만리장성 때문에 흉노족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다가
훈족이 되어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일어나고
훈족의 일부가 지금의 헝가리를 세웠다는 설도 있어.
그리고 그 중 아주 일부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와서
바다가 나오니깐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서
(세계지도 그려서 이동경로 표시해준다)
우리나라 동해안을 타고 쭈욱 내려오다가 드디어 태백산맥이 끝나는 곳에서
살만한 평야를 발견하지.
거기가 어디일까?
바로 경주야.
얘네들은 머리에 금관을 쓰고 온갖 금장식을 하고 있어서
金(금) 씨 라고 붙였는데,
지금의 무슨 성씨가 된거지?
학생들이 김씨요~~라고 대답한다.
김씨 모두 손들어봐!
너희들이 바로 흉노족의 직계자손이야
(학생들이 또 와~ 하고 웃는다.)
김씨일파들은 급 당황.
너희들 혹시 박물관이 살아있다 1 봤니?
거기 흉노족 나오는데...
(우리 학교 학생들은 공고1학년들이다. 대부분 수업 잘 참여하고 얼마나 착한지 모른다^^)
학생들 중에 누군가 벌써 눈치빠르게 말한다.
아! 흉노족들...... 찢어 죽이는 놈들요?
응.. 사지를 찢어죽이는 풍습을 갖고 있다고 미국 영화에 나오지?
네~~!
우리나라 조선시대 까지 능지처참이 있었쟎아.
우리 민족의 일부는 흉노족의 후예라는 증거야.
이거 누가 주장한 학설이지?
(학생들 대답못함)
그거 내가 혼자 주장하고 있는 학설이야.
(학생들 이번엔 야유)
김씨들이 가지고 들어온 풍습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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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김씨들은 한반도에서 눈부신 활약을 한다.
그리고 1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의 위용을 구경하라며
지금도 후세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훌륭한 김씨 중의 한 사람인
태종무열왕릉에 도착하였다.
이상하게 내내 황산벌 영화의 태종무열왕이 머리속에 계속 떠오르는지...
상상력이 너무 가난하다.

수업하면서 영화 황산벌의 그 장면을 보여준다.
황산벌 시작하자마자 태종무열왕, 연개소문, 의자왕, 당태종이 담판짓는 장면^^
물론 몇 년전에 모의고사에 출제되었던 그 문제를 같이 풀고 나서이다.
문제에 나오는 시나리오를 내가 먼저 사투리살려가면서 읽어주면서 문제풀고나서
이 장면을 보여주면 학생들 눈이 반짝반짝 거리고
수업씽크로율 100%이다. ^^

무열왕릉은 굴식돌방무덤이다.

릉의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군데군데 돌을 놓아 고정하고 있다.
김유신묘에가면 지석은 더욱 발달한다고 학생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이 돌들을 찍어 두었다. ^^

중학교에 문화사가 없어지고
고등학교에 나오는 문화사는 가르치려하면 학년이 끝나는 바람에
요즘 국사가 반신불수가 된 느낌이다.
예전에 중학교에서 문화사 포함 국사를 가르칠 땐
학생들이 문화사 파트도 참 좋아했었고
학생들이 훗날 우리나라 곳곳의 유명 문화재를 돌아볼 때
역사적 안목으로 문화재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국사를 통해 키워줄 수 있었건만....
새 교육과정마저도 문화사를 외면했다!!!!!

무열왕릉비이다.
위의 설명에 나오듯이 비석의 몸은 없어지고 비석의 받침대인 거북과 비석의 머리 부분만 남아 있다.
무열왕릉비의 뒷모습인데
꼬리를 보면
힘주고 있음이 팍 느껴진다.

거북의 옆모습이다.
특히 거북의 얼굴을 보라
정면을 향했지만
거북의 머리가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목에 힘을 주고 걸어나올 듯 하다.

조금 더 앞으로 가보면
거북이 입을 앙 다물고 노려보는 듯도 하고

앞에서 보면
거북의 입주위가 발그스름하다.
이 비석을 제작한 신라인은
애초에 원석을 두고 붉은 부분을 거북의 입으로 정하고 조각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거북이 더 사실적으로 보인다.

비석의 머릿돌인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다.
중간에 무열왕의 둘째아들 김인문이 조각한 글자가 있다.
이수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고 쓰여 있다.

정면에서 보면 금방 맛있는 무언가를 먹은 듯한 거북이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무열왕릉 뜰에는 군데군데 초등학생들이 소풍나와 있었다.
아무도 떠들지 않고 모두들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담임선생님은 주변에 서 계시고
설명하는 사람은 거의 젊은 사람들인데,
학생들 질서도 완벽하게 잡아주면서
설명도 달변으로 하신다.
궁금증에 알아보니, 저 설명하시는 분들은
관광회사에 소속되어 일당 15만원을 받고 일하신다 한다 ^^
문화유산해설사와는 다름.

무열왕릉 뒤 쪽으로 걸어가면 서악리 고분군이 나온다.
무열왕릉에서 100미터쯤 떨어졌을까?

주인공은 알 수 없으나
무덤의 규모는 오히려 무열왕릉보다 더 컸다.

오른쪽은 고분인데,
중앙의 편평한 부분도 왠지 무덤이 아닐지? 하는 의구심이 자꾸 들었다.

봄은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봄은 예쁜 색깔로만 채워져 있다.

무열왕릉묘와 서악리 고분군의 전경과 뒷 산인 선도산이다. 산 꼭대기 바로 아래의 사당을 유심히 보라.
혁거세를 낳았다는 선도성모를 모신 사당인 성모사이다.

그 사당을 15배 줌으로 당겨 찍었다.
얼마전에(2009년 5월) 선도산에 불이나서 잿더미가 되었다더니...............

선도산을 올라가지는 않고 멀찌감치서 촬영만 하고나서 다시 무열왕릉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소나무들이 뒤에서 무열왕릉을 호위하고 있다.

다시 무열왕릉비를 찍었다.
거북의 얼굴

무덤의 주인공을 밝혀준 글씨

거북의 앞 발가락은 5개이다.

거북의 뒷 발가락은 4개이다.
거북이 힘을 주며 나아가려는 듯한 조각상이다보니
거북의 뒷발에 힘이 들어가면 자연적으로 발가락 하나는 안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4개이다.

여섯마리의 용을 3용 2조로 조각했다.
옆에서 촬영하이 여의주와 용의 손가락이 더욱 선명하게 나와서
흐뭇했다.

느껴지지 않는가? 거북이 살아서 기어나가려는 듯한 기운.

어! 이건.......
이수를 내려놓았다?
어찌된 일?

앞발가락 조각도 약간 다르고

뒷발가락은 5개이다.

바로 김인문 묘의 귀부이다.
이수가 없다.
그리고 조각모습도 약간 다르다.

위에서 보면 이런 느낌이다.

김인문....
그 이름 석자를 보는 순간
신라인이 존경스러워졌다.
며칠 전 어느 학생이 국사시간에 그랬다.
선생님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우리나라 영토가 훨씬 커졌을텐데요...
어떻게 고구려는 2세기에 고대국가가 되고
신라는 200년이나 늦게 고대국가가 되었는데도 삼국을 통일했어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쟁의 승리는 군사력이 반, 외교력이 반이야.
아니 어쩜 외교력이 더 중요할 지도 몰라.
러일전쟁에서
누가 일본이 승리한다고 생각했겠니...?
일본의 영일동맹, 포츠머스조약..
이런 외교력 덕분에 읿본에 유리하게 돌아간것이고...
게다가 일본의 노기장군은
두 아들이 여순전투에서 죽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이겨놓고도 사상자가 많았다는 이유로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였지.
당시 일본의 분위기는 지도층이 앞장서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참가할 정도로 건강했어.
물론 우린 그 침략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당시 신라도 국제 외교를 자국에 유리하게 이끌었고
신라의 젊은이들도 화랑으로 적극 전투에 가담했으며
김춘추의 아들인
김인문은 숙위로 당에가서
전쟁의 막후에서 최선을 다 했다.
살아생전 신라로 오지는 못했지만
당의 힘을 이용해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누르고 최종 승자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한 덩어리가 된 신라인의 기운과 그들의 용기와 지혜가
신라가 최종 승자가 되도록 만들어 주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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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신라인은 김인문의 시신을 이곳에 안치했다.

현재 우리 나라는 어떠한가?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앞장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병역의 의무를 다 했는가?
대통령 이명박 - 면제
국무총리 정운찬 - 면제
국정원장 원세훈 - 면제
안상수 원내대표 - 면제
최시중 - 일병귀휴,아들 면제
특별보좌관 강만수 - 면제
윤증현 재경부장관 - 면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 면제
이만의 환경부 장관 - 면제
김경환 법무장관 - 면제
백용호 국세청장 - 이병 소집해제
김황식 감사원장 - 면제
윤여표 식약청장 - 면제
정정길 대통령 실장 - 면제
원희룡 혁신위원장 - 면제
장수만 국방부 차관 - 면제
그들을 욕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이 그들에게 권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내 집값 조금 더 올려줄까해서...
그까짓 투표 좀 안하면 어때서...
찍을 놈 없으니 아예 기권...
이런 국민들에게 딱 어울리는 정권이다.

김인문묘 역시 지석이 있다.

천년 전에도 개나리는 있었겠지?

김인문 묘 바로 뒤에 김양 묘가 있다.

설명에 나오듯이 신라 말 여러 왕을 탄생하는 데 막후 역할을 한 인물이다.


걸어나오다 김양의 묘를 돌아보았다.

꽃은 당신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지 않는가?

드디어 흥무문이다.

멀리 김유신 장군묘가 보인다.
그런데 왜 비석이 2개일까?

호석이 굉장하다.

태대각간 김유신묘라고 쓰여 있다.

더 가까이에서 촬영했다.

그런데 우측에 흥무대왕릉이라고 쓰여 있다.
후대에 이것 때문에 논쟁이 일어났다.
한 하늘에 임금이 둘 일수 없다.
아무리 흥덕왕 때 그를 흥무대왕으로 추존했다할 지라도
왕으로 표기하는 것을 불가하다는 쪽과
신라 때 왕이 내려준 명칭인데 왜 안되냐는
김유신의 후손측이 대립했다고도 한다.
어쨌든 김유신은 죽어서 왕이 된 인물이다.

보다시피 김유신은 법흥왕 때 멸망한 금관가야 마지막 왕의 증손이다.
김유신은 김해김씨.
김춘추는 경주김씨.
그리고 경주김씨는 김해김씨와 결혼하였다.

호석의 12지신상

뱀인가?

쥐........

호석은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묘를 잘 보호하고 있다.

김유신장군묘를 지키는 참봉이 부임할 때마다 식수를 했나보다.
그리고 표지석도 박아놓았다. 꽤 여러개 있었다.

할머니들께서 표지석 옆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열심히 닦고 계셨다.
왜 닦으세요? 하니
진딧물과 같은 벌레가 자라지 않게 하려고
그냥 맹물로 닦는다고 했다. ?

소나무, 아니 적송이다.
일본의 국보 제1호는 이 적송으로 만든 것이다.
김유신 묘 근처에 아주 많이 자라고 있었다.
1천5백년전에 만든 김유신의 묘.
지금부터 1천5백년 후인 서기 3500년이 되면
과연 누구의 묘가 이처럼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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