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에는 선생의 자명(自銘)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면서 어리석고(生而大痴)
자라서는 병도 많아(壯而多疾)
중간에 어찌하다 학문을 즐겼는데(中何嗜學)
만년에는 어찌하여 벼슬을 받았던고!(晩何叨爵)
학문은 구할수록 더욱 멀어지고(學求愈逸)
벼슬은 마다해도 더욱더 주어졌네(爵辭愈嬰)
나가서는 넘어지고(進行之路)
물러서서는 곧게 감추니(退藏之貞)
나라 은혜 부끄럽고(深慙國恩)
성현 말씀 두렵구나(亶畏聖言)
산은 높고 또 높으며(有山의의: 山밑에 疑 자로 산이름의자 라는데 컴에 없음)
물은 깊고 또 깊어라(流水源源)
(........)
조화 타고(천명으로 살다가) 돌아가니(乘化歸盡)
무얼 다시 구하랴.(復何求兮)
위는 인터넷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수집한 자명(自銘)인데 (.......)안에 무슨 글자가 있지 싶어 마침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 발간한 <안동문화유적답사>에서 빠진 부분을 찾을 수 있어 아래에 첨가합니다.(아래 10줄이 위 (......)부분에 들어가야 합니다.
"처음 뜻대로 자유롭게 소요하니(婆娑初服)
뭇사람의 비웃음을 벗었지만(脫略衆산:言+山=비방할 산)
내가 품은 생각 누가 알것이며(我懷伊阻)
내가 지닌 패물 누가 즐겨 줄 것인가(我佩誰玩)
내 옛사람을 생각하니(我思古人)
진실로 내 마음과 부합하는구나((實獲我心)
어찌 오는 세상을 알리요마는(寧知來世)
지금에도 얻은 것이 없는 것을(不獲今兮)
근심속에서 즐거움이 있었고(憂中有樂)
즐거움 속에서도 근심은 있었네(樂中有憂)"

<도산서원 입구 안동댐 상류에 있는 시사단>

<시사단 안내판>

<영락재: 자식을 퇴계에게 맡긴 정사성이 이 집을 지어 기증함>

<문지회원 90명이 동참한 답사기념촬영, 도산서원 앞에서>

<도산서당, 서원과 서당이 같은 장소에 있는 곳은 유일하다. 퇴계당시 지은 초라한 3칸집이다. 방은 완락재, 마루는 암서헌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서당 앞의 작은 연못 정우당, 아직 연꽃이 피지 않았다>

<정우당 안내판>

<몽천 안내판>

<작은 샘인데 아직도 그 물이 깨끗하다>

<도산서당 좌측 건물 농운정사,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해서 지은 기숙사>

<도산서당에 들어가는 사립문, 그 정취가 새삼스럽다>

<언제 누가 쓴 현판인지는 잘 모르지만 잘 어울리는 서체다>

<진도문을 오르면 도산서원이다>

<동광명실, 서원에 오르기 전 동서 양쪽에 광명실이 배치되었는데 도서관이다. 현판 글씨는 퇴계 친필>

<서광명실>

<도산서원 강당인 전교당, 현판글씨는 한석봉이다.그가 원서산(院書山)까지 쓰고나서 도(陶)자를 쓰려니 비로서 도산서원임을 확인하고 떨려서 도란 글자가 제대로 써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동재인 박약재, 서재보다 선배 원생들이 거처했다>

<서재인 홍의재>

<도산서원 강당인 전교당>

<전교당 안내판>

<제사 공간이 상덕사로 들어가는 삼문>

<상덕사 안내판>

<상덕사 앞에서 열심히 해설을 듣고 있는 회원들, 현지해설사 권영길선생>

<전사청:제수를 마련하던 곳>

<고직사: 서원 관리인 처소>

<유물전시관인 옥진각 안의 전시물. 퇴계의 친필임>

<홀로 있더라도 언행을 삼가해야 한다는 뜻의 신기독>

<무불경, 무(毋:말무, 없을 무)를 모(母)로 착각할 수 있는데 글자가 다른 것이다. 무불경은 공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으로 보면 된다>

<도산서원 전경>

<서원에서 주차장에 이르는 길, 여기에 포장이 된다면 어떨까요? 동의하시는지요?>

<주차장에서 퇴계종택 까지는 약 2km나 된다, 그 길섶에 머루포도가 잘 자라고 있다>


<30도가 넘는 염천을 걸어 종택으로 향하는 회원들>

<저 고개만 넘으면 곧 종택이 나올 듯하다>

<종택에서 묘소로 가는 길섶의 야생화, 그 이름은? 참 저번에 월성재에서 찍은 야생화는 동자꽃이라고 여러분들이 알려 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근접 촬영한 야생화>

<종택 건너편 풍경>

<종택 전경, 논의 벼가 운치를 더해 준다>

<16대 종손 이근필선생과 기념촬영을 하다>

<종택 안채 입구>

<종택 사랑채, 지난해 작고한 15대 종손의 빈소가 그대로 온존한다>

<퇴계선생의 맏며느님 묘소, 우측으로 보이는 계단을 오르면 퇴계묘소다>

<퇴계묘소 전경>

<준비한 제물을 진설하는 장면>

<분향>

<잔을 올리는 장면>

<일동 재배>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란 유언을 새긴 비석, 우측에는 자명글도 새겨져 있다. 만은(晩隱)이란 늦게 은거하여 제자를 길렀다는 뜻이랍니다.>

<비석하나만 있는게 퇴계선생의 유훈을 더 잘 받드는 게 아닐까 싶은데 석물이 많이 서있다>

<묘소 우측의 석물>

<묘소 입구 마을에 세운 독립운동 기념비>


<16대 이근필 선생이 쓴 경>

<15대 종손 이동은 옹이 100세 떼 쓴 수신십훈>

<수신십훈의 뒷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