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기획특집 - ‘황제, 길을 걷다’> ① 그렇게 겨울이 시작되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융희(隆熙), 우리에게는 순종이라는 조선 27대 임금으로 더 친숙한 이름이다. 그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09년 1월 7일 도성을 떠나 일제가 만든 경부선 철도를 이용해 대구를 찾았다. 황제가 도성을 떠나 첫 발걸음을 내려 놓은 것이다

이후 황제는 부산과 마산 등을 방문한 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번 대구를 찾는다. 황제는 지금의 달성공원을 둘러본 뒤 그해 1월 13일 도성으로 돌아간다.

황제의 남도 순행은 민심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황제는 일제가 철저하게 계산해 놓은 정치적 이익 앞에 이용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황제가 도성을 떠나 걸었던 길은 압제에 의한 무겁고도 힘든 발걸음이었던 것이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이제 우리는 황제가 걸었던 길을 통해 아픈역사를 되돌아보고 자기반성과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역사를 알아가는 이유다.

데일리안 대구경북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황제가 처음으로 힘겨운 발걸음을 옮겼던 길을 조명하는 ‘황제, 길을 걷다’라는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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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월 7일 오후 3시 24분 대구역, 서울에서 떠나온 열차가 천둥 같은 기적소리를 내면서 멈춰섰다.

대구역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음력으로는 12월 16일이다. 소한과 대한은 이미 지나 갔지만 겨울바람은 여전하다. 발을 이리저리 구르고, 손을 이리저리 비벼 보지만 추위는 쉬 가시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기병과 군악대는 인파 속에서 이리저리 감시의 눈길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면 가차없이 제압 할 태세다. 파란 하늘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있었고, 그 가운데 일장기는 유독 커 보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온다. 21발의 화포가 황제가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황제는 지붕이 없는 가마, 일명 옥교(玉轎)를 이용하고 있었고, 정부 관리들은 말을 이용했다. 나머지는 모두 걸어서 대구역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대구군수 겸 경상도 관찰사를 맡고 있던 박중양과 고위인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고객 숙여 예를 갖췄다.

대구역 광장을 가득메운 사람들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조선의 27대 임금인 순종(융희 황제를 편의상 순종으로 표기한다)을 처음으로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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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방향으로 순종남행당시 대구역에 걸린 만국기와 환영인파, 대구역 환영아치, 순종이 대구역에서 하차할 때 환영하는 모습, 순종이 달성공원을 향해 관찰청 정문을 나온 모습이다 ]

 

순종의 대구 방문은 그해 1월 2일에 결정됐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새해를 맞아 황제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경부선 철도를 이용해 백성을 살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순종은 수락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순종이 순행을 떠나기 전 내린 조령(詔令)을 통해 “지방의 소란은 아직도 안정되지 않고 백성들의 곤란은 끝이 없으니 말을 하고 보니 다친 듯 가슴이 아프다. 더구나 이런 혹한을 만나 백성들의 곤궁이 더 심하여 질 것은 뻔한 일이니(중략) 직접 국내를 순시하면서 지방의 형평을 시찰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알아보려고 한다”라고 적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당시 발행 중이던 대한매일신보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대한매일신보는 순종이 남행하기 하루 전인 1909년 1월 6일자 2면 머릿기사에서 백성들의 고통을 살피기 위해 남도를 순행할 것이라고 적고 있다.

신문은 기사에서 순종의 일정을 하루 단위로 알리고 있었고, 각부대신과 이등통감이 함께 떠난다고 밝히고 있다. 또 순종의 일정과 관련해 경무국장과 관리와 궁내부 고등관 등이 미리 어로(御路)를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8시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열차를 타고 순종이 찾은 곳은 대구였다. 평생을 도성에서 보낸 순종이 처음 본 백성은 바로 대구 사람들이었다.

순종과 함께 대구를 찾은 또 다른 사람,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난 하야시 도시스케(林利助). 바로 이토 히로부미다.

조선에 을사조약을 강요하고,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퇴위 시킨 인물이다. 일본에서는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 받지만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이다.

그는 왜 순종에게 남도 순행을 제안했을까?
그리고 순종과 함께 남도 순행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어느해 보다 추웠을 순종의 겨울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데일리안 대구경북=최용식기자] 공동기획 문화산업전문기업 ㈜ATBT www.atb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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