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는 대구경북에서 30여년 넘게 주로 고등학교 사회를 가르치시다가 정년퇴임을 하신 분입니다. 대구고 경북고 달성고 경덕여고 대구과학고 등에서 근무하셨고 지금은 문화유산지킴이회 회장, 대구소비자연맹자원봉사 진우회창설(퇴직교원단체)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계시며, 매주 1~2편씩 수백명의 지인들에게 유익한 메일을 보내주십니다. 이 페이지는 이종원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메일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아버지의 메일을 받고 싶으신 분은 jooyun7@paran.com 으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박달재, 세명대, 의림지를 돌다

16일은 친구들과 산행하는 날이다. 당초 행선지는 안의계곡과 상림이다. 산도 좋지만 잘 조성된 계곡 길을 산책하고, 연꽃이 만개했을 상림도 탐이 나는 코스다. 그런데 일기가 불순하여 비교적 비가 올 확률이 떨어지는 북쪽의 박달재로 차머리를 돌리기로 했다. 요즘은 참석자가 20명을 겨우 넘나드니 의사결정도 쉬운 편이다.

 

 박달재 전설에 따르면 영남의 도령 박달은 과거 합격이라는 청운의 꿈을 갖고 한양을 찾아가다 평동마을의 한 농가에서 그 집의 딸 금봉이에게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금봉이도 박달을 만나 넋을 잃고 말았으니 달빛이 호젓한 밤 두 청춘남녀는 사랑을 맹세하고 장래를 약속하며 밀회로 밤을 새웠다. 그러나 이들은 이별 앞에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정성을 다해 몰래 싸준 도토리묵을 허리춤에 달고 박도령은 눈에 어리는 금봉이의 모습을 애써 지워가며 이등령 아흔 아홉 구비를 꺾어 돌며 눈물을 뿌렸다.

 한양에 도착한 박달은 만사에 뜻이 없고 오로지 자나 깨나 금봉이 생각뿐이었다. 연연한 그리움을 엮어 벽에 걸고 과거를 보았으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며칠을 두고 고민하는 날이 계속 되었다. 한편 박달을 보낸 날부터 성황님께 빌고 빌기를 석 달 열흘, 끝내 소식이 없자 금봉이는 아흔 아홉 구비를 그리운 박달의 이름을 부르며 오르고 내리다 마침내 실신하여 상사의 한을 안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이의 삼우날 평동에 도착하여 금봉이의 허망한 죽음 앞에서 실의와 허탈감에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뜬 박달 앞에 금봉이가 애절하게 박달을 부르며 앞으로 지나갔다. 앞서가던 금봉이가 고개 마루 정상벼랑에서 박달을 부르며 몸을 솟구치는 찰라, 박달은 금봉아! 한마디를 부르며 금봉이를 잡았으나 이는 허상일 뿐 벼랑에서 떨어지는 몸이 되었다.


울고 넘는 박달재  (작사 반야월/ 작곡 김교성/ 노래 박재홍)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산골 나를두고 가는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도토리 묵을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재 하늘고개 울고넘는 눈물고개/

돌뿌리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길아/

도라지 꽃이피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금봉아 불러보나 산울림만 외롭구나

 하기야 박달이 과거에 급제하여 금의환향했더라면 이 전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울고 넘는 박달재’가 애창곡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 아닌가.

 주론산 등산로를 따라 전망대까지 약 900m 올랐다가 서원휴게소에 내려와서 점심을 하기로 하고 산을 올랐다. 비온 뒤라 산길이 곧 물길이 되어 있다. 조심해서 전망대까지 다녀와도 제법 땀이 밴다. 마침 휴게소에 팔각정이 있어 일행 17명이 한자리에서 점심을 먹으니 흐뭇하다.

 

 점심을 끝내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부근에 있는 의림지를 보고 가기로 뜻이 모여졌다.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조성한 오래된 저수지임을 알고 있고 전에 와 본 곳이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런데 의림지 부근에 있는 세명대학의 조카 생각이 났다. 방학이니 학교에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락해보니 방학도 없이 연구실에 있다며 오란다. 친구들에게 동의를 얻어 차를 세명대학으로 돌렸다. 문화관을 찾아오라는데 구내 안내판을 따라 가니 쉽게 상봉할 수 있었다. 

 

 세명대학은 약 20년 된 사립대학으로 경기고속과 대원고속을 운영하는 회사가 설립하여 한의대를 비롯하여 재학생 약 9천명이 되며, 부지는 서울대, 영남대에 이어 세 번째로 크며, 조카는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직을 갖고 있다. 저널리즘스쿨은 대학 졸업생을 여러 가지 우대를 해서 뽑아 기자나 PD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대학원이다. 연구실이 넓어 17명이 다 앉을 수 있었고, 우황청심환 비슷한 선물을 한통씩 주었다. 갑자기 이루어진 일인데 귀한 선물까지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참으로 고맙다.

 

 부근의 의림지까지 안내를 해 주겠다며 동행했다. 의림지는 물길이 들어오는 보조 저수지와 큰 저수지가 연결되어 있어 아무리 큰물이 나도 큰 저수지에 더 이상 물을 가둘 수 없으면 보조 저수지에서 바로 아래쪽으로 흘러가게 설계되어 있어 범람할 우려가 없고, 못 둑도 아주 좁은 곳에 설치하여 선인들의 지혜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부근에 많은 식당과 놀이시설이 있어 유원지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일제 때부터 있던 작은 2층 식당에서 예약해 둔 소백산 막걸리와 파전, 감자전으로 중참을 먹었다. 물론 조카가 쏜 것이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잔뜩 흐려 저수지의 운치는 더할 나위없다. 세명대학이야 모두 초행이지만 의림지도 처음 온 친구들이 제법 있어 이리로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불과 1시간 전에 방문한다고 불쑥 연락한 숙부가 나이 값을 하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이를 순순히 받아 준 조카에게 감사를 드리며 용돈깨나 나갔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하기만 하다. 그래도 숙질간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좋은 하루였다. 친구들도 표정이 밝은 것을 보면 즐거운 하루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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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휴게소, 보통 박달재휴게소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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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황당은 최근에 제천시에서 조성한 것으로 금봉이가 성황님께 박달의 과거급제를 빌던 것을 상상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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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당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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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당 내부, 박달성황지신이란 신주가 있다. 마침 한 부부가 소원을 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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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때 썼던 천이 나무에 감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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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가 산행의 종착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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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가 곱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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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한자리에서 점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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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재조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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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봉이가 박달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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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떨어졌고 금봉이 볼 면목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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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정겨웠던 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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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대학 문화관 앞에서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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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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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쪽에 들어온 물이 우측 수문을 통해 주저수지로 들어가고 넘치면 아래로 흐르도록 설계된 보조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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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는 이봉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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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막걸리에 취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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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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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마신 집, 낙원식당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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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터널을 통과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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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터널에서 본 의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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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에서 물이 들어오는 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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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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