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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善之家 必有餘慶 不善之家 必有餘殃
조선 철종 때 경주에 김기연이라는 선달이 살았다. 무과에 급제하고도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을 선달이라 한다.
홀어머니 밑에서 글에는 관심이 없고 무예에 힘써서 급제는 했으나 워낙 많은 합격자를 내던 시절이라 벼슬을 얻지 못하던 차에 엽전 일천 꿰미를 마련하여 서울에 당도하여 벼슬을 사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 대감댁 청지기들과 어울려 술과 노름으로 돈을 다 탕진하였다.
집으로 내려와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여 논밭을 판 일천 꿰미를 얻어 상경하여 또 탕진하였고, 그 뒤에도 심부름꾼을 시켜 어머니를 속여 돈을 받아 와서는 탕진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 경주의 어머니와 처자식이 남의 집 행랑채에서 셋방살이로 근근이 살아간다는 소식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귀향길에 올랐다. 수중에 칠팔십 꿰미가 남아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거여동 주막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거지 행색을 한 여인을 발견하고 밥과 엽전 두 꿰미를 주면서 “속담에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얻어먹지도 못한다는데 이걸로 옷이라도 사 입고 빌어먹도록 하게.”
그 뒤 거지 여인은 우연히 강원도에서 올라온 담뱃짐 한 바리를 두 꿰미에 사서 담뱃값이 크게 오르는 바람에 80꿰미나 벌었고 장사가 잘되어 큰돈을 모으게 되었다. 주변의 술꾼들이 과부인 이 여인을 탐하였지만 “혹시나 김선달이 찾아오면 개가를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들을 대리고 혼자 살겠다.”고 하는 단호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
이 무렵 우암 송시열의 후손인 송병일이 경주 부윤으로 있을 때 이 여인은 자기 아들을 경주로 보내 이방을 한양으로 모셔와 김선달을 수소문해서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마침내 왼쪽 뺨에 앵두만한 점이 있는 김선달을 찾게 되었고 그는 짚신을 삼아 팔아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거지신세로 살고 있었다. 물론 이방에게 돈을 많이 건네면서 그간의 사연을 적은 편지를 주면서 속히 한양으로 올라오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선달네 가족이 숭례문 밖에 살고 있는 그 여인을 찾아왔다. 버선발로 맞으면서 진수성찬을 내어왔다. 그리고 “엽전 두 꿰미가 2만 꿰미가 되었는데 이는 김선달님의 은혜입니다. 1만 꿰미를 선달에게 주었다. 그 뒷얘기는 짐작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은사님께서 주신 책 <어울림을 배우라>(김태완지음)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런저런 것을 생각게 하지 않습니까? 김선달이 베푼 작은 돈 두 꿰미가 김선달을 구해냈군요. 만일 김선달이 벼슬을 사러 한양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연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전화위복이지요. 그리고 상상을 하면 끝이 없겠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