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광복군으로 귀국 30년 뒤 같은 날 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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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평전/[1장] 풀리지 않는 의문사 반생의 위업
2008/10/02 08:00 김삼웅
아이들에게 아버지처럼 살라고 가르치기가 이 마당에선
두렵기 짝이 없다. 그도 인간일진대, 왜 다른
정치인 남편이나 아버지와는 달리 어째서 남이 안하고
주저하는 일을 먼저 나서서 말하고 먼저 시작해서
태극기가 휘날리는 하늘 밑에서도 찬 바닥 옥중에서
고생해야만 했던 것인가. 버스 값이 없어 걸어
학교다닌 딸아이의 발이 부르텄을 때 참자고
타일렀지만, 이제부터는 뭐라고 타일러야 한단 말인가?

김희숙(장준하 선생 미망인), '수기처럼 <돌베게>를 베고'

'당신의 가시는 길 편히 가소서', 미망인 김희숙 여사


1975년 8월 17일 오후, 여느 해처럼 폭염이 내려쬐고 있었다.
여유가 있는 계층은 막바지 휴가를 즐기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집이나 직장에서 노염과 씨름하고 있었다. 한줄기 소나기라도 내렸으면 했지만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이 해는 연초부터 정치적으로 충격적인 사태가 거듭되었다.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 투표가 실시되고(2. 12), 고려대학에 휴교령이 내린 긴급조치 제7호가 선포되었다(4. 8). 인혁당사건 8명의 사형이 집행되고(4. 9), 서울농대생 김상진이 유신체제와 긴급조치에 항의하여 할복자살 했으며(4. 11), 박정희 대통령은 그의 할복을 계기로 학생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나자 유신헌법의 반대ㆍ개정을 금하는 긴급조치 제9호를 선포했으며(5. 13), 사회안정법이 제정되는(7. 9) 등 민주주의가 뿌리채 뽑히고, 인명이 참살당하고 있었다.

‘유신귀신’의 망령이 배회하면서 민주회복이나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끌어가서 전국의 감옥은 넘쳐났다. 8월 중순의 폭염만큼이나 정치정세의 수은주도 끝없이 치솟았다.

이날 <동아일보> 석간은 “항일 독립투사이며 전 국회의원인 장준하씨가 17일 오후 2시반경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도평 3리 약사봉에 등산갔다가 하산길에 벼랑에서 실족, 추락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이날은 장준하가 광복군의 OSS대원으로 일본군의 무장해제 등을 위해 이범석, 김준엽 등과 여의도 공항에 도착한 지 만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장준하는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가 대통령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15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건강의 악화로 석방되었다. 두 달 동안 병원에서 신병치료를 받고 퇴원하여 건강은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였다. 광복군 출신의 장준하는 일본군 출신의 박정희 대통령을 줄기차게 비판해왔다.

‘밀수왕초’ 등의 발언으로 구속되고, 박정희가 추진한 한ㆍ일회담을 굴욕외교라고 거세게 반대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일본군 장교출신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장준하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일제강점기 이래 저항과 수난으로 점철되어 온 장준하의 갑작스런 죽음은 어수선한 시국의 상황과 겹치면서 의문이 증폭되었다. 바로 이태 전에는 야당의 대통령후보였던 김대중이 토막살해 위협을 겪고 도쿄에서 납치되어 왔다.

저녁 늦은 시각에 찾아간 면목동 장준하의 전셋집에는 함석헌 등 여러분이 참변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 침통한 표정으로 비좁은 안방과 마당에 앉아있었다. 두 아들과 일부 인사는 사고현장으로 가고, 뒤늦게 소식을 전해들은 이들은 집으로 찾아 온 것이다. 안방에는 고인의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내어걸리고 <일주명창(一注明窓)>이란 휘호가 주인 잃은 것도 모르는 듯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심지 하나가 창을 밝히고 있다”는 뜻을 담은 이 휘호는 장준하의 생애를 잘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조문객들이 빈약한 주머니를 털어 소주를 사오고 저녁을 거른 사람들은 라면을 사다가 끓였다. 상가에서는 조문객들에게 저녁을 대접할 양식도, 변변한 술안주도 없었다. 세상에는 높고 낮은 초상, 빈자와 부자의 초상이 많지만, 조문객들이 추렴해서 술사고 라면을 사와서 끓이는 ‘저명인사’의 초상집은 그 때 장준하의 집 말고 또 있었단 말을 듣지 못했다.

다음은 부인 김희숙의 증언.

비좁아 집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만 사흘밤이나 멍석과 신문지를 갈고 앉은 골목길에서 밤참은커녕 차 한 잔 대접 못한 형편에 제 돈으로 소주병을 사다 까놓고 밤샘을 해주던 이름도 얼굴도 다 기억 못하는 1백 여 명의 그 청년들에게 어떻게 무어라고 마음을 전하고 갚아드려야 할는지 알 수가 없다. 죽은 이는 갔건만 끝내 이런 인정과 의리상의 빚까지 내게 남기고 갔다. 그러나 이것을 괴로움이라기보다는 요즘 밤이 새도록 곰곰 다져보는 장준하의 아내의 긍지라고 자위해 본다.
(주석 1)

장준하의 시신은 다음날 새벽에야 집에 도착했다. 약사봉 계곡에서 운구하고 관계 기관의 조사를 거치느라 늦어진 것이다.

다음은 당일 현장에 있었던 함석헌의 증언.

택시를 몰아 면목동에 가니 집은 텅 비고 가까운 친구 두 세 분만이 와있을 뿐이었습니다. 방안을 들여다보니 빈 침대만 놓여있고 미소를 띤 사진은 벌써 내놓아져 있었습니다. 늘 보던 <일주명창(一注明窓)>이라고 쓴 액자는 여전히 걸려 있었지만 타서 밝히던 한 자루 초는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불행이 닥친 것이 사실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래도 믿어지지가 않아 밤새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진상을 확인해 보려 했으나 알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날이 새고 18일 아침 7시에 유해를 실은 앰블런스가 괴물처럼 왔습니다. 문을 여니 등산복을 입은 채 들것 위에 누워있는 사람은 불러도 대답이 없고 귀에서는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습니다. (주석 2)

주석
1) 김희숙, '수기처럼 <돌베게>를 베고', <그 심지에 다시 불길을>, 함석헌 외 편, 195~196쪽, 동광, 1980.
2) 함석헌, '아, 장준하!', <씨알의 소리>, 1975년 7, 8월호,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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