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는 대구경북에서 30여년 넘게 주로 고등학교 사회를 가르치시다가 정년퇴임을 하신 분입니다. 대구고 경북고 달성고 경덕여고 대구과학고 등에서 근무하셨고 지금은 문화유산지킴이회 회장, 대구소비자연맹자원봉사 진우회창설(퇴직교원단체)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계시며, 매주 1~2편씩 수백명의 지인들에게 유익한 메일을 보내주십니다. 이 페이지는 이종원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메일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아버지의 메일을 받고 싶으신 분은 jooyun7@paran.com 으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봄같지 않은 날씨가 지겹게 이어지더니 저도 체면이 있는지 이제 활짝 봄꽃과 함께 피었습니다.백령도 천안함에서는 실날같은 작은 소망이라도 있으려나 연일 귀를 기울이지만 애꿎게도 어선까지 침몰하는 겹걱정이 생겼군요. 그래도 마냥 거기에만 모두가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4월 1일, 중구 도심재생문화재단에서 금년들어 세번째 포럼을 감영공원에서 시작하여 향촌동 북성로 등을 돌면서 짓궂은 비를 맞으며 두 시간이나 진행되었는데 두 분 교수님의 해설을 듣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골목문화안내 지역이기도 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젊은 시절 술잔을 나누던 골목이 바로 향촌동이기도 했답니다.

 

경상감영공원 동남편에 있는 옛 산업은행 건물이 서있는데,  대구에는 1906년 대구농공업은행(大邱農工業銀行)이 처음 창립되고, 1908년 경상농공업은행(慶尙農工業銀行)으로 변경되었다가 1918년 10월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 대구지점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1931년경 일본이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하였으며, 1954년 이후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대구시에서 인수하여 박물관으로 개관할 예정입니다. 건물은 르네상스풍 철근콘크리트 2층으로 남쪽과 서쪽에 설치한 한 출입구 포치(Porch)를 중심으로 각각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

<폭파될뻔 한 건물>

 <칠곡 출신 장진홍은 조선은행 대구지점,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등의 목표물에 폭탄을 던지기로 하고 1927년 10월 16일 칠곡의 집에서 폭탄을 제조하여 대구까지 운반한 뒤, 이를 선물 상자로 위장한 채 심부름꾼을 시켜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전달했다. 은행원이 눈치를 채고 경찰을 부르면서 바깥에 옮겨둔 폭탄 상자가 폭발하여 경찰 4명을 포함한 6명이 부상을 입었고, 장진홍은 무사히 달아났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친척인 장용희에게 안동의 주요 시설을 폭파할 수 있도록 폭탄을 제조하여 전달했으며, 친구 김사실과 함께 영천에서의 거사를 위한 폭탄도 제조했다. 이 두번의 후속 폭탄 테러 계획은 실행에 옮겨지지 않아 미수에 그쳤다.

경찰의 수사망이 점점 조여오자 일본으로 피신하여 오사카의 동생 집에 은신해 있다가 최석현 등을 앞세운 일경의 끈질긴 추적 끝에 1929년 체포되었다. 이듬해 사형 선고를 받았고, 최종심에서도 사형이 확정된 뒤 대구 형무소에서 자결하였다.>

위 부분은 인터넷에서 찾은 것입니다만 위 건물이 장진홍선생에 의해 폭파되었다면 물론 이렇게 남아 있지는 못하겠지만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그 훌륭한 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당일 빗속에서 찍은 것입니다. 사진에 간단한 설명을 달겠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날 되십시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포럼에 모여든 사람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선화당은 공사중인데 준공일이 다되어도 저러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여기서 경북대 이정호 건축학과 교수의 조선식산은행대구지점 건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북성로의 일제때 지은 도자기 공장 건물의 측면, 도자기를 흉내냈다고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북성로는 산업공구골목인데 이 건물도 고풍이 서려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북성로는 대구읍성 북쪽담장이 있었던 곳인데 대구의 대표적인 친일파 박중양이 조정의 허락도 없이 일제 앞장이 노릇을 하느라 읍성을 헐고 성곽이 있었던 곳에 길을 내었으니, 동성로, 남성로,서성로,북성로가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다. 북문인 공북문이 있었던 자리에 지금은 작은 표지석만이 외롭게 서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제일인슈로 우측, 승용차 뒤에 표지석이 서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일제 때 목욕탕이었다는데 지금은 경상북도 자동차사업조합이 쓰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북성로를 따라 계속가면 달성공원으로 이어지는데 서성로 조금 못미쳐 우측으로 좁은 길이 나있다. 1909년 1월 순종이 이또오히로부미와 함께 대구역에서 내려 달성공원까지 갔는데 당시 밤을 새워 길을 급조했다는 곳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마무리는 지금은 비어있는 전매청건물에서 했다. 질의응답도 하고,왼편이 경북대 이정호교수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여기는 남성로 약전골목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동산동 오토바이골목 중간쯤에서 좌측으로 난 골목안에 고 삼성 이병철회장이 살던 한옥이 있다.해동인쇄소란 간판이 붙은 집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 집에서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한 이건희회장이 어린 시절 살았다고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낯선 사람이 움직이니까 충견이 담장위까지 올라와 짖어대는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대문이다. 아무런 표지가 없다>

혹 틈이 나시고 대구의 골목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저에게나 중구시니어클럽 담당자에게 연락하면 언제라도 골목안내를 해 드립니다. 물론 무료입니다. 단 마지막에 고맙다는 인사는 받겠습니다.

조회 수 :
3873
등록일 :
2010.04.05
09:24:32 (*.1.189.82)
엮인글 :
http://www.ezhistory.org/zbxe/index.php?document_srl=12273&act=trackback&key=0f5
게시글 주소 :
http://www.ezhistory.org/zbxe/1227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8 경남 함양의 서암,벽송사,오도재,상림 [레벨:13]홈지기 2010-06-22 2340
57 실상사(實相寺) [레벨:13]홈지기 2010-06-19 2241
56 강릉 선교장과 초당 순두부 [레벨:13]홈지기 2010-06-15 3687
55 경기전과 대아수목원 [레벨:13]홈지기 2010-05-19 3167
54 화암사(花巖寺) [레벨:13]홈지기 2010-05-13 2586
53 계절의 여왕 [레벨:13]홈지기 2010-05-06 2722
52 묘답(猫畓) [레벨:13]홈지기 2010-05-06 2788
51 4월아 [레벨:13]홈지기 2010-05-01 2769
50 월악산 언저리를 돌다 [레벨:13]홈지기 2010-04-20 2738
49 안민가와 찬기파랑가 [레벨:13]홈지기 2010-04-20 3457
48 보림사(寶林寺) [레벨:13]홈지기 2010-04-17 2493
47 경산 용성 육동의 반룡사(盤龍寺) [레벨:13]홈지기 2010-04-09 3884
46 팔공산 비로봉 [레벨:13]홈지기 2010-04-05 2600
» 대구북성로와 대구읍성 [레벨:13]홈지기 2010-04-05 3873
44 퇴계가 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레벨:13]홈지기 2010-03-30 2862
43 봄이 오는 소리 [레벨:13]홈지기 2010-03-22 2914
42 어르신, 대한민국이 감사드립니까? [레벨:13]홈지기 2010-03-17 3020
41 이왕이면 떡을 [레벨:13]홈지기 2010-03-15 3047
40 격포, 채석강, 새만금방조제, 금산사 [레벨:13]홈지기 2010-03-03 3110
39 내소사 탐방 [레벨:13]홈지기 2010-03-01 285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