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관에서 본 광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 젊은이가 관 앞에 주저앉아 "여기 내 동생이 죽어 있다. 어떻게 한국 군인이 같은 한국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라고 비통하게 절규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가족 전체가 죽임을 당한 3개의 관(부모와 7살 소년)이 있었다. 가족이 몰살당했기에 울어줄 사람도 없었지만, 누군가가 갖다 놓은 하얀 국화꽃만 조용히 놓여 있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몇명의 여고생들도 한 반 친구의 관 앞에서 목이 메여 울고 있었다. 한 여고생이 "17살의 앳된 우리 친구(박금희)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다"고 절규하며 애국가를 불렀다. 당시 언론들은 광주시민들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도라고 보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내 기사에 시민들이 애국가를 부르며 흐느끼는 장면을 묘사했다. 시민들의 시위와 항거가 북한의 사주나 공산주의 같은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질서를 지키려 하고 한국의 민주화를 열망한다는 느낌을 취재 내내 받았기 때문에 나름의 방법으로 기사에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날 그곳에서 본 장면은 내 평생 잊지 못하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9살 때 2차대전 막바지를 경험했는데, 그때 독일 한 도시의 기차역에 죽어 널브러져 어린이를 포함한 주검들을 보았을 때 받았던 충격과 함께 광주에서 그 장면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0518192020973&p=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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