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자(49·가명), 1980년 5월 당시 광주시내 한 여고 3학년이었다. 5월19일 오후 4시께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유동 삼거리를 지날 때였다. 느닷없이 군인 둘이 팔을 붙잡고 머리를 때리며 그를 강제로 군용차에 태웠다. 치마로 얼굴을 가리게 해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차가 멈춘 장소는 음침한 산속이었다. 둘러보니 끌려온 다른 여성도 있었다. 군인 대여섯이 달려들더니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그들을 때리고 집단성폭행했다. 그 뒤 언제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없지만 걷고 걸어서 집으로 왔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이 일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가 정신질환을 얻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는 머리가 늘 깨질 듯 아파,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무엇엔가 홀린 듯 산으로 들로 떠돌았다. 그런 그를 가족들은 곳간에 가두기도 하고 족쇄를 채우기도 했다. 무안에 있는 갱생원에 끌려가 6개월간 감금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 결국 그는 나주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매달 입원비 26만원을 감당할 형편이 아니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가출과 기행, 그리고 통원치료가 반복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나마 김성자의 마음에 평온이 찾아온 것은 90년쯤이었다. 약을 꾸준히 먹고, 절에 들어가 마음을 다스린 덕택이었는지 결혼을 생각할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그냥 5·18 때 다쳤다. 그래서 가끔씩 몸이 아프다’고만 말하고 결혼했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의 정신질환을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상상도 못할 일이었고, 그 원인을 알았을 때는 더 충격이 컸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숨겨야 했던 아내의 다친 마음은 오죽했을까 싶었다. 문제는 아이를 낳은 뒤부터였다. 그만그만하던 아내의 상태가 출산 뒤 급격히 나빠졌다. 아이를 낳기 위해 임신 기간에 약을 끊은 탓이었다. 정신질환은 장기간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특성이 있었다. 물론 완치도 가능하지만 아내와 같은 사례는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했다. 담당 의사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꾸준히, 그러니까 거의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상담과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병이 악화된 김성자의 생활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갔다. 때때로 발작을 일으키고 그런 날이면 온 집안을 들쑤셔놓았다. 물건을 부수고 남편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결혼을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본가에서는 “사람이 앞날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로 살아야 하는데 앞날이 뻔한 생활을 사는 것”을 못마땅해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내의 발병과 맞바꿔 꾸린 가정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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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5월27일 ‘5월항쟁’ 이후 광주시내 한 여고 교실에 돌아오지 않은 친구의 자리에 하얀 조화가 놓여 있다. 휴교령이 풀려 학교는 다시 문을 열었지만 죽거나, 다치거나, 끌려가거나, 사라진 여학생들 중에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여고시절 교사가 꿈이었던 김성자는 지금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컴퓨터도 배우고 싶고, 피아노도 쳐보고 싶다. 하지만 삶의 갈피 어디쯤에서 놓아버린 그의 영혼은 지금도 아프다.

그해 5월 공수부대가 자행한 만행 중 가장 참혹한 후유증을 낳은 것은 이처럼 어린 소녀를 비롯한 여성들에게 가해진 집단성폭행이었다. 전쟁 때도 처벌받는 중범죄가 백주대낮에 제 나라 군인들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더구나 피해상황마저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우선은 피해 당사자들이 대부분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된 사례가 많아 그 진상을 규명하기가 어렵고, 한편으로는 피해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여전한 편견 탓에 피해 사실을 밝히기를 꺼리는 까닭도 있다. 대부분 당시 그런 사례를 봤다거나 들었다는 간접증언만으로 ‘참상’을 짐작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치유도, 피해 보상이나 책임자 처벌을 요구할 근거도 미약한 형편이다. 다만, 당시 그날 그 짐승 같았던 계엄군, 가해자들의 기억과 양심에는 남아 있을 터이다.

정리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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