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 계 ( 李 成 桂 )
1392년 7월에 고려의 공양왕을 양위시키고 새왕조를 건국하고 태조가 되니 이것이 바로 조선의 건국입니다국호를 조 선 ( 朝鮮 ) 이라 정하고 1394년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하였습니다. 1398 년 제 1 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둘째 아들 방과에게 선위한 뒤, 상 왕(上王)이 되고 1400년 방원(芳遠)이 즉위하자 태상왕이 되었습니다. 1402년 왕자들의 권력 다툼에서 빚어진 고뇌로 불가(佛家)에 귀의하여 여생을 보냈습니다.
출처: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477692
태조의 정책
태조 이성계는 제위 기간에 고려의 부패한 여러 정책을 타파하였습니다. 사대주의 (事大主義) . 배불숭유(排佛崇儒) 을 건국 이념으로 삼아 조선 500년의 근본이 되게 하였고 관제의 정비 병제(兵制)와 전제(田制)의 재조정 등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졌으며, 신진 사대부들이 문란한 토지 제도를 바로 잡고, 경제 기반을 다지기 위해 과전법을 실시했으며, 과거합격자를 관리로 뽑아 전치는 양반 관리들 중심으로 이루어지도록 사회의 관료화를 추진했습니
다.
이밖에 조선을 건국하는데 공이 큰 사대부들이 성리학을 중시하므로 성리학을 국가의 기본 학문으로 하여. 성리학의 이념과 이론에 따라서 유교적이상 정치를 실현하고자 덕치주의를 표본으로 하였습니다
제 1 차 왕자의 난
태조 이성계는 정비인 신의왕후 한씨 사이에 여섯명의 아들 방우 , 방과 , 방의, 방간 , 방원 , 방연을 두엇습니다. 그리고 계비 신덕왕후 강씨 사이에 두아들인 방번 , 방석을 두어 모두 여덟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조선을 건국하여 왕위에 오른 태조이성계는 첫째부인 한씨 소생 왕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당시 총애하던 계비 강씨의 소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습니다. 한씨 소생 왕자들은 이를 못마땅해 했는데 특히 조선건국의 제 1 공로자로서 고려조의 마지막 수호자 정몽주를 연석에 불러 그의 마음을 떠보기위해 지었다는(하여가) 로 유명하며 조선 건국의 반대 세력을 제거할때 큰 역할을 한 다섯째 방원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방원은 친복형제들과 1398년 사병을 동원하여 세자 방석을 지지하던 개국 공신 정도전 , 남 은 등을 제거하고 이어 세자 방석과 바로 위 방번을 죽이는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제 1 차 왕자의 난 입니다.
제 2 차 왕자의 난
1 차 왕자의 난을 성공하자 방원의 휘하 이 저 , 이거이 , 하륜 , 이숙번 등이 그를 세자로 옹립하려 했으나 정치적 입장과 위의 형들이 있기에, 방원의 뜻으로 둘째 방과가 세자가 되었습니다. 이가 바로 조선 제 2 대왕 정종입니다. 그런데 후에 정종에게 소생이 없자, 세자의 자리를 놓고 내째 방간과 다섯째 방원은 미묘한 갈등을 하던중, 공신록에 불만을 품은 박 포란 자가 방간에게 붙어 세자 자리를 충동질하여 1400년 방간은 방원과 무력 충돌을 했는대 그때 충복들과 사병수가 많은 방원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바로 이 사건이 제 2 차 왕자의 난 입니다. 그 후에 방원은 세자에 오르고 같은해 11월에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 받으니 이가 곧 조선의 제 3 대왕 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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