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임시정부청사에 마련된 김구 선생 집무실 전경
ⓒ 심규상
상해임시정부

우익이 김구를 부인하는 것은 '자기부정' 아니면 '커밍아웃'

김구(1876~1949)

 

황해 해주 출생 호는 백범(白凡). 1893년 동학에 입교하여 접주가 되었다. 1895년 만주로 피신하여 의병단에 가입하였다. 1896년 민왕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 상인을 군인으로 오인하여 살해하였다. 체포되어 복역 중에 탈출하였다.

 

1910년 신민회에 참가하고 1911년 105인 사건으로 17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914년 출옥하였다. 3·1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1928년 이시영· 이동녕 등과 한국독립당을 조직하였다. 이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항일테러활동을 시작하였다.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에 선출되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신탁통치반대운동을 주도했다.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국제연합의 결의에 반대하고 북한에 들어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교섭을 벌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 1949년 6월 26일 육군소위 안두희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다소 길게 인용된 윗글은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에서 만든 책의 내용 중 김구와 관련된 서술이다. 이 글에는 김구를 깎아내리기 위한 의도가 다분히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 글은 김구가 일본 상인을 군인으로 오인하여 죽인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읽기에 따라 김구가 애먼 사람을 때려죽인 살인자로 인식될 수도 있는 위험한 서술이라고 본다.

 

물론 이 부분은 김구 연구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당시의 신문 <독립신문>이 김구가 살해한 사람은 일본 상인이라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일어용신문이었던 독립신문의 보도를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할 이유는 우리에게 없다. <백범일지>에는 김구가 살해한 사람은 일본군 중위로서 이름은 스치다 조료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 서술이기도 하다. 2004년 7월 서울고검은 "김구가 무고한 일본인을 살해했다"고 주장한 문건을 배포한 친일작가 김완섭씨를 허위사실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직권 기소한 바 있다. 당시 정현태 검사는 김씨에 대한 기소는 국사편찬위원회와 보훈처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나서 내린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뉴라이트는 김구가 사람을 오인하여 죽인 것으로 단정하여 서술했다.

 

다음으로 뉴라이트 교과서는 김구가 '항일테러활동'을 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굳이 '테러'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또 뭘까? 그렇다면 이봉창· 윤봉길의 의거도 자연 '테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뉴라이트는 김구의 업적인 이 사건들을 김구와 관련된 서술에서 아예 누락시켰다(혹시 정말 테러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또한, '국제연합 결의에 반대', '북에 들어가서 교섭을 벌였으나 실패',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 등의 문구는 김구를 부정적인 인물로 비치게 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는 서술은 과연 뉴라이트가 긍정하는 인물은 김구 주석인지 아니면 암살범 안두희인지를 혼동하도록 만들 지경이다.

 

'돈 10만원'으로 선열을 우롱하다니

 

  
백범 김구 선생
ⓒ 백범기념관







































더 큰 문제는 이런 뉴라이트의 견해를 이명박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극명한 예로 10만원권 화폐 발행 유보 건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5만원권과 10만원권 등의 고액권 발행은 지난 정부에서 정식으로 발표하여 추진하던 사안이었다.

 

당시 시점으로 1만원권이 나오고 나서 물가가 12배 이상 올랐으므로 고액권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7대 국회에서 먼저 여야 합의로 고액권 발행 촉구 결의안을 냈고(이것은 법률적 효력을 갖는다) 이를 수용한 정부에서 국민 여론을 조사한 후 5만원에는 신사임당, 10만원권에는 김구의 초상을 넣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14일 보수우익단체들이 한국은행 앞에서, '10만원권은 이승만, 5만원권은 박정희'라는 주장을 펼치며 시위를 한 후 한국은행의 태도가 돌변해 버린 것이다. 한국은행은 "정부의 요청으로 10만원권의 발행을 유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것은 말이 유보지 사실상 취소된 것이나 다름없다. 당시 백범김구기념사업회에서는 "뉴라이트가 떠드니까 정권이 지폐 인물을 이승만· 박정희로 바꾸려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처음 한국은행은 10만원권 발행에 대해 뒷면에 들어갈 대동여지도 목판본에 독도가 빠져 있어서 독도가 있는 필사본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하더니 국정감사가 끝나자 아예 10만원권을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독도 문제는 국정감사에서 피해 가기 위한 술책이었다는 의심을 샀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도 있다"고 말했는데, 그 복잡한 사정이란 무엇인지? 이는 누가 보아도 뉴라이트와 정부가 김구를 싫어하기 때문에 빚어진 일로 판단된다.

 

옹색하고 구차한 정부의 논리

 

정부는 경제가 어려워 국민이 씀씀이를 아껴 10만원권의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만사를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둘러대는 버릇이 있다. 이미 10만원권은 자기앞수표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것이 화폐로 대체된다고 해서 뭐가 어떻게 달라진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정부는 신용카드의 사용이 늘어 고액권의 필요성이 적어졌으며, 고액권이 돌면 물가가 오른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신용카드 사용도 늘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물가는 1만원권이 처음 나올 때보다 12배 이상이나 올랐다. 따라서 지금 10만원이라고 해봐야 그때 1만원의 교환가치보다 작다. 또한 고액권이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는 주장에도 근거가 없다. 100달러 500달러권도 있지 않은가.

 

한국은행은 10만원권 발행은 유보하지만 5만원권은 예정대로 올 상반기에 발행한다고 한다. 5만원권에는 신사임당의 초상이 들어간다. 정말 10만원권 발행 유보가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고액권 화폐의 인물로 국민적 합의를 이룬 김구를 먼저 5만원권에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우익이 김구를 부정하는 것은 자기부정 아니면 커밍아웃

 

유감스럽게도 해방정국에 임시정부의 회의실과 김구의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된 경교장(사적 465호, 서울 종로구 평동 108 소재) 복원 사업에도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한다. 복원을 공언한 서울시의 발표와는 달리 8달이 지나도록 손도 못 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백범과 이봉창· 윤봉길 그리고 이동녕 조성환 등의 순국선열들이 묻혀 있는 효창공원 성역화사업은 아예 무산되고 말았다. 심지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중·고교에 배포한 책자 <건국 60년 위대한 국민 - 새로운 꿈>에는 '대한민국의 모태는 임시정부에 있지 않고 미군정에 있다'는 해괴한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결국 이런 일련의 일들은 우선 순국선열에 대한 기본 예의를 차리지 못하는 무례한 짓이다. 지하에 있는 김구가 보기에, 후손이란 것들이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돈에 자기 얼굴을 넣느니 마느니 하며 꾀를 부린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김구는 이역 중국 땅에서 어머니와 아내와 아들을 떠나보낸 불운의 삶을 살았다. 특히 장남 '인'은 중국정부가 지원한 페니실린을 김구가 주지 않아 폐렴으로 죽었다. 아울러 김구는 식민지 시대 유일한 임시정부를 이끈 주석이다. 따라서 그는 임시정부의 주석이자 대한민국의 영원한 주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 성향을 떠나 그는 모든 것을 바쳐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풍찬노숙(風餐露宿)한 우리가 떠받들지 않으면 안 되는 조상이다.

 

마지막으로 김구는 대표적인 보수우익의 인물이다. 그런데 보수우익을 자처하는 뉴라이트와 이명박 정부는 왜 같은 보수우익인 김구를 싫어하는 것일까? 김구가 이승만처럼 화려한 학벌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김구는 '좌빨'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일까?

 

김구를 부인하는 것은 우익의 자기 부정이자 스스로 우군을 줄이는 어리석은 짓이다. 우익이라면 꼭 독재자인 이승만이나 박정희를 좋아해야 하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것은 우익이 아니라 '수구꼴통' 또는 '파시즘' 쪽에 가깝다. 정 이승만· 박정희가 좋다 해도 김구와 함께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은가?  우익이 김구를 부인하는 것은 스스로 우익이 아니라 수구꼴통 또는 파시스트임을 드러내는 일종의 '커밍아웃'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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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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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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