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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범 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 “특히 그가 주목받는 것은 박정희의 자문역으로 활약했고 수출주도형 종합상사체제의 개발 드라이브를 박정희에게 직접 제시하고 지도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두환에게는 민심수렴을 위한 ‘올림픽유치’를, 노태우에게는 대통령제의 문제점에 관한 대책강구(내각제)를 조언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한국 군사정권의 전임 대통령들은 모두 일본우익의 거두 세지마 류조(瀨島龍三)의 충복이었다.
한상범 동국대 명예교수(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는 21일 가진 데일리서프라이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사실을 공개하고 한국의 보수우익을 ‘부패기득권’으로 규정했다.
한 교수는 △세지마 류조와 한국의 친일수구 부류와의 관계와 △제국주의에 대한 세지마의 변호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주일한국대사가 세지마 앞에서 앉지도 못하고 부동자세로 있었다는 충격적인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박정희 ‘수출종합상사’ 전두환 ‘올림픽’은 스승 세지마의 조언
세지마 류조가 모델이 된 야마사키 도요코(山崎豊子)의 소설 ‘불모지대(不毛地帶)’는 한국에서 몇 출판사에서 발간된 인기물로 한 때는 한국기업의 우경엘리트와 군부일각에서 필독 참고서처럼 읽혔다.
세지마 류조의 회상록(産經新聞, 1995년, 419쪽 이하)에 따르면 세지마는 수출주도형 종합상사체제의 개발 드라이브를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제시하는 등 박 전 대통령의 자문지도역으로 활약했다.
박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전두환·노태우정권도 세지마의 제자를 자청했다. 모 재벌총수의 주선으로 세지마를 만난 전임 대통령들은 국가정책의 기본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을 구해왔으며 전두환의 경우 12·12쿠데타를 앞두고 일본대사에게 미리 보고하기도 했다(영국 웨릭대학 학위논문, 2002 국제정치논총(박선원, ‘냉전기 한일협력의 국제정치-1980년 신군부등장과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 국제정치논총 제42집 3호 2002년 한국국제정치학회).
세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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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불모지대의 모델이기도 한 세지마 류조의 행태를 밝힌 책.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민심 수습을 위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올림픽유치’를 제안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일본식의 내각제를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태우, 일본가요 열창으로 세지마의 칭찬 받아
이 중에서도 노태우 씨의 경우는 대통령 퇴임 후 처신과 공적 과업에 대해 직접으로 지도를 청했으며 세지마의 방한 시 술좌석에서 일본의 인기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를 열창해 칭찬을 받기도 하는 등 ‘한심한 수준’의 충복노릇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의 친일·수구·기득권 부류는 1965년 한일국교 이후 공공연하게 일본수구 극우와 유착관계를 가지기 시작해 지금까지 연대·유착·협조관계를 넘어 예속적인 인적·물적 관계를 이어왔다.
특히 일제 국수주의 교육과 제국대학간판 그늘에서 잔뼈가 굵어온 친일파들의 일본숭배는 일본사회의 산업발전뿐 아니라 문화나 정신 전반에 영향을 받아 사실상 90%는 정신적 문화적으로 일본 극우와 닮은꼴이 되어 있다는 것.
한 교수는 “친일파 부류가 일본제국의 정신과 업적(?)을 숭상하고 찬양하고 추종하는 심정과 자세는 결코 어느 특정인에 한정되는 우연한 일이 아니다”라며 한승조 씨를 비롯한 부류들을 꼽고, “문제는 일제잔재청산 개혁에 대한 우리 기성세대의 지체와 망설임이 치명상이 되고 있는 것을 반성하고 재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지마, ‘한국 식민지는 잘된 일’
세지마는 기본적으로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에 대해 ‘잘된 일’로 평가하는 일본의 극우주의자. 그는 국가정책의 방향과 구상을 밝힌 그의 저서 ‘우리 일본에 대한 제안(提案)-조국재생(祖國再生) (PHP연구소(硏究所)간 1997년)’에서 이런 견해를 밝히고 있다.
세지마에 따르면 한국의 식민지화는 당시의 국제정세로 볼 때 당연한 조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견해는 한국의 박종규(박정희 경호실장), 한승조(박정희 추종 교수)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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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지마류조의 회고록에 박정희와 전두환 두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언급되어있다.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 비롯한 대부분의 친일파와 그 아류가 취하고 있는 입장에서 반영되고 있다(같은 책, 94쪽 이하).
한 교수는 “일본의 아시아정책은 미국과의 동맹을 기본 틀로 해야 한다는 것이 세지마의 주장”이라고 말하고, “이런 입장은 오카사키히사히코와 같은 지정학적 전략론과도 일치하는 우익 극우의 공통된 입장”이라며 오카사키히사히코의 저서 ‘전략적 사고(戰略的思考)란 무엇인가(中央公論新書)’를 증거로 제시했다. 재미있는 것은 세지마가 미국과 러시아를 가상의 적으로 꼽아 여전히 아시아 제패를 노리는 군국주의자의 건재함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런 세지마는 한국의 전경련은 자문위원으로 모셔서 예우하고 있었으며 한 교수와도 관련된 일화가 있다. 한 교수는 세지마가 1990년대에 전경련 초청으로 내한했을 때 이 문제를 제기해 전경련 측에 대해 해명을 요구했고 이는 당시 대한매일(현 서울신문)에도 기사로 보도됐지만 전경련 측은 “정치와 무관하다”며 답변을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세지마를 비롯한 일본 극우수구의 입김이 한국 곳곳에 배어 있다”고 지적하고, “1961년부터 노태우에 이르기까지 친일파 군인의 지배 속에서 30여년 동안 친일명사(?)가 이 나라를 주름잡으며 더럽히고 망쳐놓았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보수의 뜻도 모르면서 무슨 보수우익
“보수의 본래 의미라고 할 수 있는 서양 사회과학의 정의에 따르면 이들은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 근대 보수주의의 사상적 원조라 할 수 있는 에드먼드 버크에 의하면 보수할 것은 전통을 중심개념으로 해서 사회관이나 인간관, 진보관 등에서 인간 이성과 합리주의의 한계를 강조한다.”
한 교수는 “한국의 자칭 보수우익의 정체는 사실상 진정한 보수와 거리가 멀다”며 ‘사이비 보수우익’으로 폄하했다. 또 한국의 보수우익을 서양의 사회과학의 정의와 비교하며 “보수주의자도 아니다”라고 신랄한 비난을 날렸다.
그는 ‘보수우익을 자처해 온 부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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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범 전 위원장이 세지마류조의 행태를 언급한 책자를 가리키며 얘기하고 있다.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 대해 △주로 친일파 및 그 아류와 추종자로 민족주의자가 외세의존의 부류라는 것 △이들은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니며 그들이 보수한 것은 구부패기득권 △자유 민주주의를 자처하면서도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거부 △참된 의미의 자유주의는 반공이 아니라는 점 등을 지적했다.
한 교수는 “한국의 보수우익은 매카시즘에 매몰돼 반대파에 대한 압살·모략·비방으로 일관했으며 관용성이 결여됐다”며 “보수우익을 자처할 수 없는 세력”으로 규정했다.
세지마 류조 앞에선 주일한국대사도 서서 부동자세
일본의 인명사전에 수록된 ‘일본 군국주의의 신화적 인물’ 세지마 류조의 프로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산세이도, 콘사이스 일본인명사전 참조).
1911년 출생. 육군사관학교 우등졸업, 육군대학 수석졸업. 1939년 다이홍에이(일본 최고통수부)부원 2차 세계대전 등 작전기획 참여담당. 1945년 만주관동군 참모(중좌) 박정희 등 만군 하급장교인 한국인 일제군인의 최고상관이 됨. 이 관계는 한국군 군대의 일제군 출신 모두의 장로로 그가 예우되게 됨. ㅊ아무개는 일군출신으로 예비역 예편으로 박정희 밑에서 주일한국대사가 되었는데 세지마 앞에서는 앉지도 못하고 부동자세로 그의 말을 경청하는 정도였음.
일본제국주의의가 패전하자 세지마는 소련군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 억류. 일본 전범재판 당시에는 소련군 측 증인으로 출석 증언. 그 일에 대해선 소련 정보기관과의 석연치 않은 설이 분분하다(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 세지마류조 참모(參謀)의 소화사(昭和史), 문예춘추사, 2000年, 23쪽 및 63쪽 이하 참조). 시베리아에서 귀국 후 1958년 이토추상사 취직. 1972년 부사장, 1978년 회장, 1981년 상담역. 그는 제국군대의 전략 전술을 기업경영에 적용해 성공한 사례로 인정되고 있음.
나카소네 수상시절 임시행정개혁추진심의회 회장으로 활약. 나카소네 수상(1982년-1987년)의 정책참모이고 일본 우익 군국주의 수구의 장로격.
이기호(actsky@dailyseop.com)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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