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35
돌의 기도
조윤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얼떨떨하다. 전북의 고창과 부안의 문화유적 답사라는 타임머신에 착 달라붙어 뒤로 달려서 약 2500년 전쯤 어느 마을을 떠돌다 갑자기 툭 떨어진 느낌이다. 언제나 가까이 있으면서도 너무 멀었던 곳이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더니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유적을 접하고 보니 정보를 통하여 보는 것보다 훨씬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고창의 고인돌 군집 앞에 서서 해설사의 열의에 찬 해설을 듣자니 내가 과연 누구였던가 하고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거석의 정령에 대한 믿음이 만물숭배의 신앙으로 이어졌다는 옛사람들의 정신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구 역사로 볼 때는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시간, 또 한편은 너무나 아득한 세월이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살다 간 우리 조상들의 숨결들이 돌 틈 사이사이 뿐 아니라 우리 주변을 둘러싸는 환경 속에 다 배어있는 듯했다. 공동무덤을 상징하고있는지도 모른다는 표석들은 그 당시 마을 사람들이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는 말에 그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보았다. 인류가 거석을 이용하여 시도한 건축의 시발이었으리라.
천여 개의 공동묘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거의 반경 4킬로미터의 돌을 운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마을 사람들 전체가 모여 이루어졌다는 것을 쉬이 상상할 수 있으며 공동체적 삶의 모습 또한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논과 산림의 경계선상의 완만한 사면에 취락과 밭이 동서로 길게 분포하는 고인돌들은 농지 사이의 경계선상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죽음의 공간은 삶의 공간을 안고 있기도 하고, 삶의 공간은 죽음의 공간을 우러러볼 수 있기도 했다. 그렇게 죽음의 공간을 마련하고 제단을 쌓아 마을 사람 모두 선인을 만나고 신을 경배하면서 무엇을 빌었을 것인가.
세계문화유적에 의하면 고인돌이 발견되는 지역은 가히 전 세계적이다. 고인돌은 조장(鳥葬) 풍습을 갖고 있었다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이 세계로 이동하여 세운 제단이자 무덤이라고도 한다. 한국의 황해도에 있다는 탁자 모양의 고인돌과 그 형태가 비슷한 것이 영국의 웨일즈에도 있다. 그러한 문명을 창건한 종족들과 한반도에서 고인돌을 만든 종족은 기원이 같다는 뜻일진대 어찌 이 민족이니 저 민족이니 적대시 할 수 있을까 싶다.
언뜻 지난 겨울 메소포타미아 문명전에서 보았던 서사시 한 구절을 생각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도시국가인 우르크의 왕이자 영웅이었던 길가메시의 서사시이다. 길가메시는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충격을 받은 뒤 영생을 찾아 광야를 헤매다가 우연히 만난 보잘것없는 여인의 충고를 듣는다. “길가메시여, 당신은 생명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들이 인간을 만들 때 인간에게 죽음도 함께 붙여주었습니다. 생명만은 그들이 보살피도록 남겨두었지요. 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십시오. 밤낮으로 춤추며 즐기십시오. 잔치를 벌이고 기뻐하십시오. 깨끗한 옷을 입고 물로 목욕하며 당신 손을 잡아 줄 자식을 낳고, 아내를 당신 품안에 꼭 품어주십시오. 왜냐하면 이것 또한 인간의 운명이니까요.” 그러나 당장 죽지 않으니 사는 동안을 위하여 물질을 아껴 쓰고 저축도 하라고도 했다. 그 한 줄의 서사시를 읽었을 때 어쩜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지침이 되는 ‘범사에 감사하고 늘 기뻐하며 항상 기도하라.’는 말과도 상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내세보다는 현실문제를 중시하였으며 도시국가마다 수호신을 섬겨 현세에서의 행복을 빌었다고 했다. 기원전 3000여 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최초의 도시국가 수메르인들 역시 현대에도 불가사의한 문명을 일으켰고 거대한 지구라트(Ziggurats)라는 탑을 쌓고 홍수가 날 때는 피난처로 삼았으며 꼭대기에 제단을 쌓고 안녕과 행복을 빌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류 문명의 발상지로서 비옥했던 그 땅은 지금, 전쟁이 끊이지 않을 조짐이며 매일 테러와 폭력에 신음하고 있는 형국이다.
몇 천년 동안 발전해온 물질문명은 한편으로는 부족간의 투쟁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져온 전쟁의 역사 속에서 생을 완전히 구가하지 못한 채 억울하게 죽은 영령들의 아우성과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메말라 가는 산 생명체들의 원성들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차고 넘치는 물질의 홍수에 휩쓸려 가는 우리 시대 우리들이 과연 옛날 고대인들보다 문명의 발달만큼 정신적으로 풍요와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할 일은 저 고인돌무덤에 제단을 쌓고 빌었던 그 당시의 사람들과 길가메시의 서사시말고 더 해야 할 일이 어디에 있을까 싶다. 그렇다고 친다면 우리는 몇 천년 동안 진정한 그 무엇의 발전을 이루어왔다고 할 것인가.
동양 최대의 고창 고인돌 군락지는 동북아시아의 고인돌 변천사를 규명하는데도 중요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고대사를 복원하는 방안의 하나로 보존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고인돌이 새 문화를 창출하지 못한 채 단지 관광상품으로만 남아 있다면 너무나 막대한 소모를 거듭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사람들이 주검을 묻고 묘제로서 거대한 돌로 무덤을 축조하여 지배층의 권위를 보존하기도 하고 조상을 숭배하기 위함이었다면 그것은 영생의 의미를 극대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해야 할지.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그 시절을 가져올 수는 없어도 정신이란 곧 바로 지금 여기에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옛날의 정신에서 오히려 현대에 되살려야 할 새 정신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고인돌 당시의 묘제 정신이나 길가메시의 서사시는 오늘날 다시 찾아야 할 새로운 정신문화의 일면이 되지 않을까.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현대적이다.’라는 말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2004년 6월)
조윤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얼떨떨하다. 전북의 고창과 부안의 문화유적 답사라는 타임머신에 착 달라붙어 뒤로 달려서 약 2500년 전쯤 어느 마을을 떠돌다 갑자기 툭 떨어진 느낌이다. 언제나 가까이 있으면서도 너무 멀었던 곳이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더니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유적을 접하고 보니 정보를 통하여 보는 것보다 훨씬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고창의 고인돌 군집 앞에 서서 해설사의 열의에 찬 해설을 듣자니 내가 과연 누구였던가 하고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거석의 정령에 대한 믿음이 만물숭배의 신앙으로 이어졌다는 옛사람들의 정신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구 역사로 볼 때는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시간, 또 한편은 너무나 아득한 세월이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살다 간 우리 조상들의 숨결들이 돌 틈 사이사이 뿐 아니라 우리 주변을 둘러싸는 환경 속에 다 배어있는 듯했다. 공동무덤을 상징하고있는지도 모른다는 표석들은 그 당시 마을 사람들이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는 말에 그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보았다. 인류가 거석을 이용하여 시도한 건축의 시발이었으리라.
천여 개의 공동묘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거의 반경 4킬로미터의 돌을 운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마을 사람들 전체가 모여 이루어졌다는 것을 쉬이 상상할 수 있으며 공동체적 삶의 모습 또한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논과 산림의 경계선상의 완만한 사면에 취락과 밭이 동서로 길게 분포하는 고인돌들은 농지 사이의 경계선상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죽음의 공간은 삶의 공간을 안고 있기도 하고, 삶의 공간은 죽음의 공간을 우러러볼 수 있기도 했다. 그렇게 죽음의 공간을 마련하고 제단을 쌓아 마을 사람 모두 선인을 만나고 신을 경배하면서 무엇을 빌었을 것인가.
세계문화유적에 의하면 고인돌이 발견되는 지역은 가히 전 세계적이다. 고인돌은 조장(鳥葬) 풍습을 갖고 있었다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이 세계로 이동하여 세운 제단이자 무덤이라고도 한다. 한국의 황해도에 있다는 탁자 모양의 고인돌과 그 형태가 비슷한 것이 영국의 웨일즈에도 있다. 그러한 문명을 창건한 종족들과 한반도에서 고인돌을 만든 종족은 기원이 같다는 뜻일진대 어찌 이 민족이니 저 민족이니 적대시 할 수 있을까 싶다.
언뜻 지난 겨울 메소포타미아 문명전에서 보았던 서사시 한 구절을 생각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도시국가인 우르크의 왕이자 영웅이었던 길가메시의 서사시이다. 길가메시는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충격을 받은 뒤 영생을 찾아 광야를 헤매다가 우연히 만난 보잘것없는 여인의 충고를 듣는다. “길가메시여, 당신은 생명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들이 인간을 만들 때 인간에게 죽음도 함께 붙여주었습니다. 생명만은 그들이 보살피도록 남겨두었지요. 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십시오. 밤낮으로 춤추며 즐기십시오. 잔치를 벌이고 기뻐하십시오. 깨끗한 옷을 입고 물로 목욕하며 당신 손을 잡아 줄 자식을 낳고, 아내를 당신 품안에 꼭 품어주십시오. 왜냐하면 이것 또한 인간의 운명이니까요.” 그러나 당장 죽지 않으니 사는 동안을 위하여 물질을 아껴 쓰고 저축도 하라고도 했다. 그 한 줄의 서사시를 읽었을 때 어쩜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지침이 되는 ‘범사에 감사하고 늘 기뻐하며 항상 기도하라.’는 말과도 상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내세보다는 현실문제를 중시하였으며 도시국가마다 수호신을 섬겨 현세에서의 행복을 빌었다고 했다. 기원전 3000여 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최초의 도시국가 수메르인들 역시 현대에도 불가사의한 문명을 일으켰고 거대한 지구라트(Ziggurats)라는 탑을 쌓고 홍수가 날 때는 피난처로 삼았으며 꼭대기에 제단을 쌓고 안녕과 행복을 빌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류 문명의 발상지로서 비옥했던 그 땅은 지금, 전쟁이 끊이지 않을 조짐이며 매일 테러와 폭력에 신음하고 있는 형국이다.
몇 천년 동안 발전해온 물질문명은 한편으로는 부족간의 투쟁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져온 전쟁의 역사 속에서 생을 완전히 구가하지 못한 채 억울하게 죽은 영령들의 아우성과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메말라 가는 산 생명체들의 원성들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차고 넘치는 물질의 홍수에 휩쓸려 가는 우리 시대 우리들이 과연 옛날 고대인들보다 문명의 발달만큼 정신적으로 풍요와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할 일은 저 고인돌무덤에 제단을 쌓고 빌었던 그 당시의 사람들과 길가메시의 서사시말고 더 해야 할 일이 어디에 있을까 싶다. 그렇다고 친다면 우리는 몇 천년 동안 진정한 그 무엇의 발전을 이루어왔다고 할 것인가.
동양 최대의 고창 고인돌 군락지는 동북아시아의 고인돌 변천사를 규명하는데도 중요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고대사를 복원하는 방안의 하나로 보존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고인돌이 새 문화를 창출하지 못한 채 단지 관광상품으로만 남아 있다면 너무나 막대한 소모를 거듭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사람들이 주검을 묻고 묘제로서 거대한 돌로 무덤을 축조하여 지배층의 권위를 보존하기도 하고 조상을 숭배하기 위함이었다면 그것은 영생의 의미를 극대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해야 할지.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그 시절을 가져올 수는 없어도 정신이란 곧 바로 지금 여기에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옛날의 정신에서 오히려 현대에 되살려야 할 새 정신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고인돌 당시의 묘제 정신이나 길가메시의 서사시는 오늘날 다시 찾아야 할 새로운 정신문화의 일면이 되지 않을까.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현대적이다.’라는 말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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