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11일 아침 대구공항으로 나갔다.
방학동안 살림살이들을 정리한다고 벌여놓은 일들이 많았다.
포인트 벽지도 군데군데 하고.
우성이방이랑 효성이방이랑 교체도 하였다.
구석구석 묵은 때, 쌓인 먼지 털어내고,
장롱속 다 꺼내어 다시 정리하고,
집안의 모든 서랍속 다 뒤져서 새로 정리하였다.
그 일들이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너무 힘들었다.
방학 때마다 발동하는 정리벽.
아마도 내가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집 가구들은 나의 등쌀에 괴로웠을 것이다.
우성이방과 효성이방의 침대와 책상 교체, 그리고 두 아이의 장롱속내용 교체하는 것.
베란다 창고 다 뒤져서 정리하기. 부엌뒤 다용도 공간 다시 정리하기 등은
중국으로 떠나기 전날까지 계속되었다.
결국 중국여행짐싸기는
떠나기 직전 해당일 새벽 1시부터 시작되었다.
대충대충 옷가지랑 세면도구 챙겨넣고,
사실은 코스도 자세하게 들여다본 적도 없이 북경과 장가계만 간다고 생각하였었다.
중국가기 전날밤에도 집안 정리한다고 애를 쓰다가 문득
일상을 털고 훌훌 떠나는 여행이 새삼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바쁜데 여행가려니 힘만 들었는데,
아마도 여행이 없었다면 난 또다른 일을 만들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공항에 나갔더니, 재은이는 이미 와 있었고, 뒤이어 경화가 왔다. 정옥이는 좀 더 느긋하게 나타났다.
실은 모두들 너무 일찍 나왔다.
옆에 보니 하나투어 깃발이 있었다. 인솔자와 대면하였다.
무지 정중하고 싹싹하게 말씀하여서
아마 인솔초보자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장진석 가이드였다.
나이 사십이 되어 떠나는 여행...
대구공항에서 탄 중국민항기는 생각보다 좁았다. 하긴 승객수가 적으니, 비행기가 작을 수 밖에.
중국의 북경공항에 도착하자 조선족 가이드가 나타났다.
상당히 재바른 사람이었다. 너무 재발라서 걸음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생각도 대처도 재발라서 때로는 위기상황때 도움이 되었다.
박철봉씨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우린 천단공원에 도착하였다.
아래는 칠성석(七星石, 치싱스) 이다.

명나라 영락제가 베이징에 황도를 건설하며 제천행사를 지낼 명당자리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의 천문이 활짝 열리며 북두칠성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에 황제가 황급히 명을 내려 북두칠성이 떨어진 곳을 찾게 하니 그 자리에 7개의 돌이 남아 있었다. 황제는 이것이 천단을 그 자리에 세우라는 하늘의 계시라 믿고 이곳에 현재의 천단을 건설했다고 한다.
이 돌들을 북두칠성을 상징하듯 7개였으나 훗날 건륭제가 그 동북쪽에 청나라 황실의 고향인 동북지방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또 하나의 돌덩어리를 옮겨 놓아 지금은 모두 8개가 있다.
원래 이 돌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으나 천단이란 신성규역의 한 자락을 차지하면서 많은 이들이 영험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 때문인지 몰지각한 일부 후대인들이 돌조각을 떼어 자기 집의 영물로 삼는 경우가 있다네요.
아래는 칠성석 안내판.

해석불가 ㅡㅡ;
광학 10배줌 카메라가 좋긴 좋다. 저 멀리 보이는 기년전 꼭대기만의 글자만 줌인하여 촬영했다.

기년전 전체 촬영 사진을 자세히 보면 올라가는 대리석 기단이 3단으로 되어 있다.
각기 다른 문양이 조각되어 있는데, 최상층에는 용 조각이, 중층에는 봉황이 조각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마치 구름위 천상의 모습을 형용한 것 같은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대길대리(大吉大利) 즉, 크게 길하며 천하를 이롭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위의 사진은 중층에 조각된 봉황(Phoenix)이다.
기년전(치녠뎬)의 앞뒤 딴제에는 길이 4.2m, 넓이 2.2m의 똑같은 크기를 지닌 3개의 석조물이 세워져 있는데
이 역시 용과 봉황, 구름 조각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조각품이다.

최상층의 용조각이다.


우리나라의 목조건축물은 자연그대로의 색깔을 보존하는 형식이지만,
중국은 온통 붉은 빛과 금빛이 찬란하다.

중층의 봉황 얼굴 조각이다. 비가 오면 저 입으로 빗물이 콸콸 쏟아진다고 한다.
용, 봉황, 구름의 수많은 입들이 빗물을 토해내는 장면은 장관일 것 같다.^^


화재 발생시 소화전으로 쓰인다 했던가?
더위에 빠른걸음에 지쳐 들어서 기억 안난다.
금인 줄 알고 서양인들이 훔쳐갈려했는데
구리라서 놔두었다던가...

황제의 자리

바람처럼 걸어가는 가이드님 뒤를 따라가면서도
중국사람들의 노래솜씨를 듣고 싶어서 기웃기웃.
마음졸이며 찍느라 사진이 흔들렸다.

너무나 푸르른 천단공원 수풀.
저기에 돗자리 깔고 30분이라도 눕고 싶었다.
그러나 출입금지?

무슨 나무,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다.
시선을 들어 하늘을 보니, 너무 예뻐서 찍었다.

뒤이어 도착한 북경의 번화가.
수많은 노점상들이 줄맞추어 서 있고,
모두들 똑같이 꼬지를 팔고 있는데, 그 내용물은 다양하였다.
근처에 가자마자 중국음식 특유의 냄새가 났다.
내 취향에는 너무나 맞지 않는...
괴로웠다.
그래서 저 과일마저도 그 이상한 냄새가 날 것 같았고,
과일에 바른 시럽은 너무 달아서 머리가 아플 것 같았다.
당연히 사먹지 않았다. 대신 구운 옥수수를 사먹었다.
옥수수 하나에 5위안이었는데, 나에게는 100위안짜리 밖에 없었다.
100위안을 내니, 중국아줌마가 거스름돈을 주었다.
아줌마앞에서 거스름돈을 세어봤다.
10위안짜리가 1개 모자랐다.
다시 확인했지만 ... 역시나
중국아줌마에게 10위안지폐를 보여주면서 1개 모자란다하니,
마저 주었다.
의도적인 것 같아서 찜찜했다.
중국가면 거스름돈 하나까지도 조심합시다.

정력에 좋다고 박철봉 가이드가 강조했던 것.
아니. 다른 것이었나?
중국인들의 음식상상력은 엽기스럽다.
그들은 상상에 그치지 않고, 맛을 본다.

가재? 는 봐줄만 하다.
그 옆에 애벌레? 구더기? 왠지 누에일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번데기 퍼먹는 거랑 같은건가? ㅡㅡ;
저거 말고 또 있었는데, 중국아줌마가 "노사진"이라고 외쳤다.
노 픽쳐도 아니고 노 사진?

북경 서커스를 관람했다.
사진기를 꺼내어 촬영하는데,
옆에서 경화가 서커스는 촬영하면 공연자가 심리적 불안을 일으켜 위험해서 촬영하면 안된단다.
후레쉬 안 터뜨리고 보이지 않게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몇 컷 찍는데, 안내원이 와서 찍지마라 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결과적으로 몰상식한 한국인이 되어 버렸다. ㅡㅡ;
참고로 금강산에 갔다온 경화에 말에 의하면
북한 금강산의 서커스는 북경보다 훨씬~ 아주 많~이 훌륭하단다. 비교가 안될만큼.
거기서 촬영금지라고 했는데 무시하고 찍던 남한 사람이 북한사람에 의해 중간에 퇴장당하고,
끝날때 까지 못 들어왔다고 한다.
북한은 역시 단호하다 ^^

몸이 연체 동물 같았다.

아주 무거운 쇠로 된 장독을 두 발로 마구 돌렸던
희한한 북경 아가씨.

우리가 처음 묵었던 5성급 호텔 "구화산장(Jiuhua spa& resort)"이었다.
호텔이 너무나 넓어서 무한지대큐에도 소개되었었다.
그때 티비로 보면서 대단하다. 대단하다라고 생각하던 그 호텔로 우린 갔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이동할 때에는 모노레일(기차)를 타고가야 가능하고,
한번 나가면 찾아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정옥이는 나무도 꽃도 숲도 없는 삭막한 호텔이라고 맘에 안든다고 하였다.
그건 그랬다.
화장실의 세면용 도자기는 중국 호텔의 특징이었다.

구화산장은 만리장성과 가까운 곳에 있다. 거기서 자고 다음날 만리장성을 구경하면 이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만리장성에 올라간 그날, 뿌연 안개가 끼여 있어 시계가 넓지 않았다.
끝을 알 수 없는 만리장성의 끝을 더욱 볼 수 없었다. 상상에 맡길 수 밖에.
우리나라의 길이가 3천리니깐. 만리장성은 3배가 넘는구나.



세계 제일의 면적을 자랑하는 천안문 광장이다. 치열했던 6.4민주화 운동의 직접적인 흔적은 없다.
중국사람에게 천안문사태 이야기를 꺼내면 대답을 기피한다고 한다.
별로 잘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화제로 삼지 않는다고 한다.
문화대혁명과 천안문사태는 아직도 그들의 치부인가보다.
광장을 중심으로 천안문, 인민 대회당, 중국 역사박물관, 모택동 주석 기념당 , 인민영웅기념비 등이 모여있다.

중국 역사 박물관?
무지 들어가고 싶었다.
천안문 광장에 도착하자 가이드의 촬영한 시간 10분 드리께요 라는 말에 놀라.
역사박물관은 안 들어가요?
거긴 역사 박물관인데요? 손님들도 별로 안 좋아하구요.
그런데 우린 가고 싶어요.
보통 저기는 사람들이 안가요.(결국 못갔다. 슬펐다. ㅜㅜ)

여기가 인민대회당인듯 . 인민영웅기념비.
중국대장정을 성공리에 마치고, 중국공산혁명을 완성한 모택동 시대에 만든 것?

천안문이다. 저 사진은 모택동.
중국은 어딜가나 저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에겐 공산주의자이지만, 중국인에겐 영웅이니깐.

자금성중에 오문이라 쓰여진 곳이다.

저 위의 사진은 무엇일까?
도대체.
된장찌게였다.

삼겹살 불판은 거의 같았다.
장가계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에 반자연ㅡ반인공의 호수인 보봉호를 갔다.
배를 타기 위해 인산인해를 사람속을 뚫고 들어가느라 진땀뺐다.
앞에 재은이는 벌써 들어가 있고,
나는 들어갈려해도 뒤에 처진 경화와 정옥이 때문에 머뭇머뭇했다.
나는 어찌 들어갔는데, 경화와 정옥이는 뚫고 나오다가 괜히 욕만 먹어서 속상해 했다.
우리 일행이 단체로 표를 끊어서 단체로 들어가야 하는데, 둘만 나오지 못해서 모든 줄이 막혀 있었던 것이다.
거긴 모두 한국사람들만 있었다.
차례를 지키기는 커녕 힘으로 밀어부쳐 오히려 앞에 밀고들어오는 한국인들의 덩치가 지겨웠다.
특히 장가계는 어찌 한국사람들만 있는건지.
겨우 배를 타니, 시원하고 경치도 좋았다.



이때만 해도 좋았다.
토가족의 처녀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목소리가 아주 예뻤다.
장가계는 원래 토가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사는 곳이란다.
그런데 배에 탄 가이드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란다.
아무나 지적을 하고 그 사람이 또 딴 사람을 지적하고.
갑자기 정옥이가 걸렸다.
정옥이는 가수니깐 다행이었다. ^^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고
****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같은 어린 내 순정
~~~~~~~~~~~~~~~~~

역시 발군의 실력으로 노래를 마쳤다. 박수~~~~~~

무지 비싸다는 지문인식 입장권 카드를 통과하고나서
천자산 케이블카를 타고 장가계를 올라갔다.

장가계에는 너무나 높은 수직 봉우리가 무수하게 서 있다.
아직도 모른다고 한다.
저 봉우리의 높이가 얼마인지,
저 밑에 누가 사는지,
아무도 내려가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어느날 누군가 저 밑으로 추락했는데, 수색했으나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세자매 바위란다.
아기가진 언니, 아기 업은 언니... 등등.


황룡동굴 입구이다. 천자산을 올라갈 때처럼 인력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1년동안 인력거일을 하면 3년을 쉰다고 한다.
팔뚝이 불끈 솟아오른 힘줄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한번 타는데 3만원 전후였다.
이 사람들은 3만원이라고 불러놓고 막상 내릴 때가 되면 인력거 1사람당 3만원이므로 6만원을 내놓으라고 한단다.
처음부터 정확하게 협상해야 한다.

장가계 국립공원에 들어가니 역시나 토가족 아가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박수좀 치세요.
돈도 좀 주세요.
비내리는 호남선 남행 열차에 흔들리는 차창너머로
눈물이 흐르고 내눈물도 흐르고 잃어버린 첫사랑도 흐르네~~
발음도 좋았다. ^^


황룡 동굴이다.
토가족의 어느 농부가 몇 년전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당시 토가족들은 어두운 동굴에서 재앙이 나온다고 하여 폐쇄하고 근처에 가보지도 않았는데,
북경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이 장가계지역에 근무하러 왔다가
처음 탐험하였고 이후 개발되었다고 한다.





황룡동굴로 가는 날은 무지무지~
더웠다.
작렬하는 태양이 우리의 인내심을 갈라놓을 듯 했다.
하필이면 차에서 내리자마자 동굴일 줄 알고
나의 소중한 양산을 놓고 내렸다.
15분정도 걸어가면서 얼마나 후회가 되든지.
동굴로 들어가는 순간 정말 시원했었다.
에어컨 바람보다 훨씬 시원하고 상쾌한 동굴에서
석주, 석순, 종주석 등을 마음껏 구경하였다.
여기는 토가족 민속촌이다.
천문산에 가면 옵션으로 7만원을 더 내라고 해서 안갔다.
실은 갈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안가게 되었다.
그러나 대신 간 토가족 민속촌은 예상보다 훨씬 재밌고 볼 만했다.

우리나라 성황당처럼 큰 나무에 울긋불긋 매단 천들.

토가족들이 전통적으로 쓰던 것이란다.
죄인을 때릴 때 쓰던 것.
아프겠 ~ 다.

토가족의 왕궁이란다.
그것을 민속촌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토가족의 연자방아이다. 어찌 이리 비슷할까?

정주의 환경유해물질 냄새가 가득한 호텔에서 겨우 씻고 나왔다.
인솔자는 방도 잡을 수 없어서 호텔로비에서 버텼다.
버스를 기다렸다.
1시간은 기다렸을 것이다.
중국의 만만디는 이럴 때는 참 견디기 힘들었다.
우린 호텔 입구에서 처량하게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타고 정주공항으로 가다가 고속도로상에서 버스가 고장났다.
고속도로에서 고장난 버스를 타고 하염없이 다른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1시간 쯤 되었을까? 드디어 다른 버스가 왔다.
그 버스를 타고 정주공항에 도착해서 겨우겨우 북경으로 올 수 있었다.
우리 말고 고장나지 않은 다른 버스를 타고 이미 도착하여 비행기를 타고 있던 승객들.
뒤늦게 우리가 비행기에 올라타는데, 그들의 표정이 무척 지쳐 보였다.
북경에 도착하는 비행기안에서 인솔자가 말했다.
이미 대구행 비행기가 우리를 기다리다 못해 떠나 버렸다고.
눈앞이 캄캄했지만,
다음 비행기를 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성수기의 비행기표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그것도 20명의 표를 한꺼번에 구하기란.
그런데 하나투어는 달랐다.
당일 표는 아쉽게 못 구했지만, 다음날 표는 구했다.
듣기로는 하나투어에서 전세비행기를 띄웠다는데....
우린 덕분에 하루 더 북경에서 자게 되었다.
Traders Hotel은 정말 최고였다.
깨끗하고 포근하고 편안함 그 자체였다.
그동안의 피곤함과 마음졸임을 그 호텔의 휴식으로 말끔히 씻어 내었다.
그 호텔은 북경4일투어 상품일 때 묵는 곳이라고 했다.
화교가 운영하는 곳인데, 동남아에도 지점이 있다고 했다.
그날 저녁의 식사도 일품이었다.
지금까지의 지저분한 중국음식과는 차원이 다른
정통 중국식이었다.
냄새도 나지 않고 맛도 일품이었다.
귀국을 못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 배추 볶음을 만드는 방법은 정말 배우고 싶었다.
너무 맛있어서 한그릇 혼자서 다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야채 볶음. 신선로처럼 계속 데우면서 먹는건데 맛있었다. 또 먹고 싶다.

생선찜인데 다들 맛있다고 했다.
육류를 잘 안 먹는 나는 먹어보지않았다.

탕수육이다.
정통 탕수육이다. 우리나라 유과처럼 바삭바삭하다. 보통 우리나라 탕수육은 물컹한데 이건 과자같았다.
약간 매콤하면서도 바삭한 것이 내가 맛본 최고의 탕수육이었다.

모택동이 즐겨먹었다던 동파육이다.
모택동이 어렸을 적 간장 장독이 빠진 벌레를 보고 절대로 간장넣은 음식은 안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돼지고기 삶은 것만은 간장양념에 다시 한번 조리해서 먹었다든가.
다른 곳의 동파육과는 질이 틀렸다.
고기도 물론이거니와 맛있는 밤까지.....
물론 나는 밤만 먹었다.
괜히 이 사진을 찍느라 다른 일행팀들에게 본의아니게
후레쉬 불빛세례 받게 하여 너무나 죄송하였다.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친 후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그 호텔은 깨끗하고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것은 물론
게다가 북경 중심지에 있어서 저녁에 북경 거리를 구경할 수 있다.
패키지로 보여주는 곳만 쫓기듯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느긋하게 현지인과 눈마주치며 걷는 것이 진짜 여행이 아닌가 했다.
우리가 조금 늦게 나오는 바람에
벌써 문닫은 상점이 많아 많이 구경 못했다.
그러나 서구문화권인 스타벅스는 12시까지 문을 연다고 했다.
우린 된장아줌마가 되기로 했다.
질 좋은 원두커피의 향속에서 행복함이 더해졌다.

호텔에서 잠을 잔 후 다음날은
짝퉁 백화점을 비롯하여 쇼핑을 하였다.
쇼핑하면서 먹은 중국 호떡이 참 맛있었다.
음료수카페에 들어가서 먹은 과일쥬스가 참 맛있었다.
재은이가 중국어 배운 것을 물어본다고
카페의 총각점원에서 1,2,3,4,~~~를 물어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총각점원이 참 시원시원하게 대답을 잘 해 주었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북경공항으로 갔다.
밤 10시 40분 비행기였다.
이륙은 11시 반쯤 했을 것이다.
북경 공항 어딘가에서 개짖는 듯한 소리가 났다.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영어로 어떤 여자가 중국 공항의 남자직원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의 절규가 거의 짐승의 울음에 가까웠다.
처음엔 한국여자인지도 몰랐다.
장진석 가이드가 저 사람들은 우리와 같이 대구를 출발했던 다른 여행사 손님들이라고 했다.
북경의 안개로 대구착 비행기를 놓친 100여명의 사람들은 난리가 난 모양이다.
우리는 그래도 호텔에서 쉬고, 관광도 더하고, 맛있는 음식도 공짜로 더 먹었는데,
다른 여행사는 하루종일 공항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표를 못 구하니, 공항에서 빈 좌석이 생길 때까지 무작정 기다렸는데,
20명 중에 겨우 2명 출국한 팀도 있고,
일부 사람들은 천진으로 가서 한국행 비행기를 탈려 했는데,
천진에 가니 한국행 비행기표를 구할 수 없었고,
언제 표를 구할 수 있는지 기약도 없어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북경공항에서 직원에게 처절하게 항의하는 한국사람역시
다른 여행사 손님인데, 예정된 날짜에 귀국을 못하는데다,
언제 돌아갈지 몰라서 그런거라고 했다.
성수기에는 비행기 좌석이 비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아마도 성수기가 끝나야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사람들의 말에 귀국을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한편으로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귀국비행기를 천재지변으로 놓치게 되자
중국주재 하나투어에서 재빨리 조치를 취해 놓았다고 한다.
사실 대구모 방송국에서 선전하는 중국여행으로 다녀올려다가(4만원이 더 저렴했다.)
그냥 하나투어로 다녀오는 것이 낫지 않을까 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실은 대구하나투어지사(알파항공여행사)의 사장님이 아버지의 제자여서 소개를 받은 것이었다.
아버지의 블로그 역시 파란에 개설되어 있다.
나의 이웃블로그에 "이종원의 사회공부방"로 등록이 되어 있다.
특히 아가씨일 줄 알았던 장진석 인솔자는 같은 직종의 인솔자와 결혼한 유부녀였다.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우리들을 따뜻하게 도와주었고,
항상 자신보다 손님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마음으로 느껴졌다.
곤란한 상황일 때는 미리 말을 하여 양해를 구하고,
뒤처지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천천히 보세요. 늦어도 괜챦아요."
더구나 귀국비행기는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침착하고 현명하게 대처하여
우리들을 안심시켰었다.
철저한 직업의식, 배려하는 근본 마음씨가 돋보인 분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수줍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어서
혹시나 초보자일까 했는데, 알고보니 유능한 베테랑 인솔자였다. ^^
구사 일생으로 우리 나라에 도착하니 벌써 하루가 지나 있었다.
대구공항 도착 비행기는 아예 없고,
인천공항 도착 비행기를 타러갔다.

버스를 타고 북경공항으로 이동하는 중에 기름을 주유하러 갔다.
바로 옆의 2층 버스가 특이했다.
이 버스는 내몽고까지 가는 버스란다.
내몽고까지 열흘 넘게 걸리므로 버스에서 먹고 자고...
자세히 보면 의자에서 180도 누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우리 다음에 내몽고도 한번 가볼까?"
인천공항에서 입국수속 밟으니 1시가 넘었다.
하나투어 측에서 대구오는 리무진 버스를 제공해 주었다.
넓은 의자에서 편하게 자면서 대구로 왔다.
대구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6시반쯤.
6일동안 대학생시절처럼 수다떨며 지냈던 친구들과 헤어졌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택시를 타고 집에 오니
반가운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그동안 아이들을 돌봐 주셨던 어머님.
모두가 그리운 얼굴이었다.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집의 안락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여행을 말없이 도와준 남편,
빈자리를 채워주신 어머님,
엄마없이 의젓하게 지낸 우성이와 효성이....
모두 모두 고마울 뿐이다.



토가족 아주머니의 공연이었다. 오른쪽 아주머니는 아기에게 금방 젖을 물리고나서 공연을 하였었다.
전통 노래를 부르고 나서 아리랑을 불러주었다.
어떤 한국인 관광객이 함께 어우러져 노래를 하고 춤을 추니,
왼쪽의 토가족 아주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주머니의 노래솜씨와 춤이 돋보였다.

토가족 소년 소녀들이 나와서 공연을 하였다.
이것을 보고싶었지만 차시간때문에 못볼 뻔했다.
다행히 천자산 옵션을 택한 일행들이 늦게 내려오는 바람에 볼 수 있었다.
대나무춤은 필리핀 전통춤으로 알았는데, 남방계통의 공유 문화인가 보다.

토가족 소녀들이 관람객들의 손을 끌고가서 같이 추자고 하였다.
나도 추었다. 내 사진도 있었는데 ^^
재밌었다.

곧이어 토가족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그 까맣고 숱많고 긴 머리들을 잡고 춤을 추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했다.

이것을 끝으로 우리는 그날 밤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북경에 도착한 후
다음날 아침 대구로 오는 비행기를 타고 왔어야 했다.
약 2시간 늦게 이륙한 북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심한 기체의 요동에 깜짝 놀랐다.
순간 무서웠다.
그런데 좀있다가 안내방송이 나왔다.
중국말과 한국말로만 나오는 안내방송에서는
북경에 안개가 끼어 착륙이 불가능하니 정주(정조우)에 불시착한다고 하였다.
정주 공항에 도착한 것이 새벽 2시쯤 되었을 것이다.
공항은 엉망이었다.
우리 비행기뿐 아니라 여러 비행기에서 내린 손님들이 공항대기실에서 어지럽게 앉거나 자거나 눕거나....
새벽 5시쯤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야 한단다.
아마도 공항측에서 많은 손님들이 부담스러워 나가라고 한 것 같다.
호텔에서 잠시 씻고 오는 것도 괜챦다고 했지만,
나는 불안했다.
내일 아침에 되도록 일찍 북경행 비행기를 타야 대구로 올 수 있을건데.
이를 어쩌나....

이 기념비는 하룡장군의 것이다.
하룡장군이 아직도 토가족을 지켜주고 있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뭐였더라?

왕궁에 있는 저 용은
배수관이다.
비가오면 용이 물을 마구마구 토해낸다.


저기가 천문산이다. 산에 뚫린 구멍이 아니라,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몇 해전에 티비에서도 서양의 항공기들이 저 구멍을 통과하는 것을 방영했다고 한다.
옵션으로 구경하신 분들은 정말 좋았다고 한다.
우린 안간 대신 멀리서 촬영하였다.
경화의 카메라로 최대줌인 3배줌을 적용해서 당겨 찍었다.
수전증 이기느라 고생했다.
내 카메라는 이때 밧데리가 다 소모되었다.
그래도 밧데리 하나로 4일을 찍었다. ^^
황룡동굴로 후레쉬 몇 번 터뜨렸더니.....



중국 사람들은 자물쇠를 달면서 자신의 평안을 빈다고 한다.




천자산 삼림공원을 내려오니, 토가족 젊은이들이 공연을 하였다.
그들의 얼굴이 환하고 행복해보였다.
토가족은 대대로 산적질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장가계 원가계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살다보니,
어딘가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습격하기에 적절했을 것이다.
평야가 많지 않아서 농사짓기도 어려웠을 것이니
고구려의 약탈경제를 용맹하고 남성다운 기백으로 칭찬하는 우리의 아량을 적용해도 될까?
토가족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온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대성통곡을 한다고 한다.
이 험난한 세상에 태어나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지 안타까워서 운다고 한다.
토가족들은 사람이 죽으면 온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기뻐서 축제를 한다고 한다.
이 모진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돌아가 편안하게 살 것이니 합동 축하를 한다는 것이다.
토가족 젊은이들은 매년 3월3일 미팅파티를 연다고 한다.
이날에는 토가족 처녀 총각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노래로 자기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한다.
먼저 총각이 노래를 한마디 부르면 처녀가 노래로 화답한다.
마지막 사랑고백은 역시 서로 발등을 살며시 밟으며 장래를 약속하게 한다.
토가족들은 결혼하면 남자가 산적을 해서 무언가를 획득해서 저녁에 오면
남자가 저녁밥을 부랴사랴 짓는다.
여자들은 그동안 여자들끼리 모여서 하루종일 투전을 한다고 한다.
남자가 밥상을 차려주면 먹는다고 한다.
토가족은 모계중심 사회로 여자의 성을 따르며 일처다부제라고 한다.
토가족의 여인들은 결혼을 결정할 때도 여자가 주도한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발등을 밟으며 청혼을 한다.
어느 한국 남자가 관광을 왔다가 토가족 여자에게 발등을 찍히고 말았고,
결국 1천위안, 우리 돈으로 15만원을 주고 간신히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단다.
토가족의 남자들이 발등을 찍히면 청혼을 거절하기가 어렵다.
만약 거절하려면 황소 한마리를 주거나 한달동안 여자집에 가서 일을 해줘야 한다.
토가족은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생후 한 달 이후, 15세까지 계속 울린다.
12세가 되면 잘 울기로 소문난 아주머니를
전문선생으로 모시고 과외공부를 한다고 한다.
여자는 시집간 첫날 시부모 앞에서도 구성지게 울어야 한단다.
토가족들은 얼마나 많이 울었냐에 따라 결혼 후의 명성이나 시집살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믿는다.
눈이 퉁퉁 붓도록 구성지게 울어야 집안사람으로 인정하고 재산상속도 해주며, 곳간 열쇠도 준다.
만약 눈이 많이 붓지 않으면 3년을 더 연습할 때까지 곳간 열쇠를 안준단다.
울음 노래의 가사는 부모와 울기, 형제 자매와 울기, 중매꾼 욕하기 등 여러 가지 내용이 있다.
가사의 양이 천 줄도 넘는데 우는 것이 얼마나 절절한지
토가족 처녀가 결혼을 앞두고 울기를 시작하면 철석간장도 녹아내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장가계에서 만나는 토가족 아가씨들은 하나같이 노래를 잘했고, 목소리도 예뻤다.

이쁜 토가족 아가씨들이 한국노래를 무지 많이 불렀다.
얄밉게 떠난 님아~ 얄밉게 떠난 님아~
내 청춘 내 운명을.......................
그들의 울음노래 문화도 점점 상업화에 물들어가는 것인가?


저기가 천자 자연보호구였던가?
하룡장군의 동상이다.
하룡장군은 토가족의 영웅이다.
모택동은 대장정 당시에 하룡장군과 함께 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6.25전쟁이 일어나고, 중국의 역습으로 1.4후퇴를 할 때
하룡장군이 제일 앞에서 탱크를 앞세우고 진격했다고 한다. ㅠㅠ

장가계인지 원가계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잠자리만은 저 뾰족한 기암괴석을 마음대로 넘나들고 있었다.
줌으로 당겨서 찍었다.

재은여사님이시다 ^^

나무가 없는 자금성을 보고 정옥이가 삭막하고 썰렁해서 좋은 줄 하나도 모르겠다고 투덜댔다.
나무가 없는 이유는 황제만 사는 곳에 감히 나무가 심을 수 없다고 해서 그렇단다.
네이버 지식인에 나와 있듯이 자객이 숨을 곳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철봉가이드님이 강조하셨다.
네이버에 찾아보니 정말 모조리 자객때문이라고 나와 있다. 황당했다.
궁궐 외성에는 해자가 있어 자객들이 그 물을 뛰어넘을 수도 없고,
담 높이 또한 15미터 쯤 되므로 자객들이 애초에 침입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중국의 실크 공장에 갔다.
사실 가기 싫었지만, 가야했다. 그런데 샀다. ^^;
저건 누에이다. 우리나라에 수출된다는 번데기.
저렇게 온갖 화학약품에 찌들어 있는 저 번데기를 우린 화학조미료를 듬뿍 쳐서 맛있다고 먹었다니.

누에의 실을 뭉쳐 만든 후에 서너명의 사람이 잡아 당긴다. 저것은 솜이 아니라 실이다.
실이 워낙 가늘기 때문에 솜처럼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푸신솜이라고 한다. 저 이불을 내가 덮어 봤기에 안다.
정말 너무너무 좋다.
우리 시어머니 이부자리가 시원찮아서 장만했다.
이틀동안 중국음식만 먹다보니 괴로웠다.
상을 닦아도 어찌 그리 지저분한지, 맛도 맞지 않지만, 모든 것이 더럽게 느껴졌다.
중국음식을 아예 먹지 못하는 우리 패키지팀의 이쁜 아가씨들이 안되었다.
장가계에 도착하자 우리를 위해 한국식당으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었는데,
또 저녁식사가 나와서 부담스러웠다.
난 원래 삼겹살을 안 먹으니, 겉절이와 반찬만 집어 먹었다.
중국의 삼겹살은 왜 저렇게 둥글게 생겼는지 모르겠다.
참 중국의 맥주병은 초록색이었다.

아래에 보이는 사진은 잡채였다.
그런데 잡채면이 우동면 같았다. 퉁퉁불은 잡채. 흑흑. 간장만 들이부은 것 같았다. 그래도 먹었다.
난 잡채 매니아니깐.

배경만 좋다 ^^

특히 은퇴한 노인들이 천단에 조성된 공원이 모여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가무는 한국인들이 전유물인가 했더니...
아마 우리나라라면 국악을 연주하며 전통노래를 불렀을까?
트로트를?
아래 사진은 기년전이다.
천단공원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명확하게 내벽과 외벽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북쪽의 벽은 원형, 남쪽의 벽은 사각형으로 원형은 하늘을 상징하고 사각형은 땅을 상징한다. 이것은 중국 고대의 '천원지방(天圓地方 :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이다.)'에 부합하는 것이다. 북쪽 벽은 또한 남쪽 벽에 비해서 높은데, 이것 또한 '천고지저(天高地低 :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 두 개의 벽은 또한 천단을 내단과 외단으로 구분하는데, 주요 건축물은 내단에 있다. 북쪽에는 기년전(祈年殿)과 황건전(皇乾殿)이 있고, 남쪽에는 원구단(圓丘壇)과 황궁우(皇穹宇)가 있다.
천단공원 내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축물은 기년전(幾年殿)으로, 황제가 오곡이 풍성하기를 빌던 곳이다. 삼중 처마로 된 원형 궁전이며, 높이는 38m이다. 3층으로 이루어진 푸른지붕은 유리기와라 불리고 하늘을 상징하는데 명대에는 아래부터 자주색,황색,푸른색의 3색이었다고 한다. 중앙의 '용정주(龍井柱)'는 일년 사계절을, 가운데 12개의 기둥은 12개월을, 바깥쪽의 12개 기둥은 12시진(2시간)을, 내외 처마 기둥 24개는 24개의 절기를 각각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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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연전에 북경 가봤는데 솔직히 우리것은 너무 왜소해서 쑥스럽데요? 차라라 안베꼈으면 괜찮은데 마치 미니어쳐 같아서리...
장가계, 역시 천하제일경입니다. 가보고 싶어라~~ 음식도 먹어보고 싶고 배위에서 한곡조 뽑고 싶어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