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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뜨거운 여름
ICT우수?교사단으로
유럽시찰을 다녀왔다.
전국에서 모인 20분의 선생님.
그 여름이 그립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
아래는 프랑스 미테랑 국립 도서관
상당히 체계화된 느낌.
그런데 전산화보다 기계화가 더 돋보인 도서관.
프랑스 콩코드 광장과 개선문
노트르담의 꼽추의 모티브가 된 노트르담 사원의 안과 밖
행복한 마음으로 출발했던 유럽이었습니다.
공항에서 처음 뵙는 여러 선생님들...
우수교원(?)이라는 명찰을 목에 걸고 우린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 유럽까지의 비행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13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서 먹고 자고 해야 하는 생활은
고문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일을 하는 스튜디어스들이 존경스러우면서도 안쓰러운 생각이 들더군요.
공항에서 처음 뵙는 여러 선생님들...
우수교원(?)이라는 명찰을 목에 걸고 우린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 유럽까지의 비행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13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서 먹고 자고 해야 하는 생활은
고문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일을 하는 스튜디어스들이 존경스러우면서도 안쓰러운 생각이 들더군요.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기 직전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낯선 풍경들은
정말 내가 외국에 왔구나...
여기서 영국이란 나라구나...
같은 농촌이지만 우리와는 사뭇 다른 이국적인 느낌들이 설레임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음 만난 가이드는 여자분이었습니다.
다음날이 되자 갑자기 인사하는 왠 필리핀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한국말을 너무나 또렷하고 명확한 발음으로 하기에
한국인이구나 싶어서 저도 얼른 인사를 건넸습니다.
김형덕 가이드님 덕분에 잊어버리고 있던 영국 역사를 다시 한번 정리하게 되었어요. 유럽여행 내내 가장 집중했던 가이드 였습니다.
그땐 기력이 아직 충천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영국에서 보았던 품위있고 찬란한 문화 유적들....
나중에 사진을 올리면서 하나 하나 정리해 볼렵니다.
무엇보다 진품으로 보았던 로제타석은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그것이 조그마한 돌맹이인줄 알았거든요.
실제로 보니 왠만한 비석정도는 되더군요.
그리고 깨알같이 새겨진 글들....
누구인지 몰라도 그 비석을 3개의 언어로 새겨놓지 않았다면
우린 아직도 이집트 문명을 마야문명처럼 수수께끼 문명으로 취급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조금 덥긴 했지만 영국은 괜챦았습니다.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에 도착하는 순간.
숨이 막히는 줄 알았어요.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찜닭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배신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버스안이 더 더웠습니다.
유럽이 너무 덥다는 기사가 우리 나라 언론에 보도되는 그때
우린 그 더위를 차속에 가두어
거기에다 우리 20명의 체온을 보태어
파리에서의 첫날을 맞이했습니다.
그 날 이후 우린
어딜 가든 에어컨 노이로제에 걸려야 했습니다.
추워서 담요를 2개나 덥고 있어야 했던 대한항공 칼이 그리워지더군요.
파리의 첫날밤 호텔 가든에서
단장님 덕분에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파리에서는 영국과는 달리 콩글리쉬가 시원하게 통하지 않더군요.
다음날 본격적인 파리 문화 유적 탐사...
눈길이 닿는 곳마다 문화 유적이었습니다.
우린 과거를 파괴하고 현대 문명을 건설했다면
그들은 과거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그것을 비켜서 현재를 이어 나가더군요.
서울에 내려서 눈길을 돌려 한국의 고유 문화 유산을 찾을려면
빌딩 숲 사이에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들은 오래된 문화 유산을 파리의 중심가에
빼곡이 그대로 살리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저녁의 세느강 유람선에서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설명을 들으면서(아... 친숙한 한국어)
좌현을 보시면 저것은 무슨 백작이 쓰던 어떤 건물이며,
그 설명이 끝나면 바로 우현을 보시면...
그리고 바로 좌현을 보시면...
1시간 내내 강 양쪽이 펼쳐진
문화유산을 끊김없이 설명할 수 있다니요?
우리 한강이라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현을 보시면 우리 나라에서 제일 비싼 압구정동 ** 아파트이며
정면에 보이는 다리는 얼마전에 무너져 등교길 버스가 추락한 **대교이며
좌현을 보시면 지은지 20년된 국회의사당이며.....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하니
1/3은 한국인이더군요.
코스 자체가 단체 관광객 전용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제대로 루브르를 느낄 수 없었던 한계는 안타까웠습니다.
리슐리외 관을 꼭 가봐야지 하고 마음먹었지만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는 사전에 공부를 하고 왔기 때문에
가이드의 설명과 관람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저 그림은 그 그림인데 싶어서 다가가는 순간 이동을 했어야 했고,
루브르의 바빌로니아 문명 전시관을 가보고 싶었지만
안되더군요.
욕심이 앞서서
이런 것들을 많이 찍어서 수업시간에 활용하고 싶었지만
가이드 설명, 사진촬영, 비디오촬영....
이것이 동시에 되지가 않았습니다.
한 가지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이런 식의 여행도 꼭 필요하지만
나중엔 정말 제대로 해보고 싶습니다.
스위스에 도착하니
스위스는 축제중이었습니다.
밤거리에 그들이 펼치는 축제의 모습을 구경하고,
우리 언니(룸메이트)가 펼치는 로드쇼를 구경하고,
즐거웠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올라간 몽블랑....
한라산이 높다하고,
백두산이 최고라 하지만,
우리가 간 샤모니의 몽불랑은 해발 3900미터였습니다.
그 자연의 위대함은 영국, 프랑스의 문화유산에서 느끼는 감동을 기죽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 꼭대기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한 인간은 훨씬 더 위대했습니다.
그동안 유럽의 더위를 식히기에 충분한 시원한 샤모니의 바람,빙하수,만년설....
다시 한번 느끼고 싶습니다.
알프스 산맥을 넘어 도착한 이탈리아...
반도란 통하는 가봐요.
한반도와 이탈리아 반도는 왠지 풍경에 닮은 꼴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부터
우리는 기가 죽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으로서 정말 최선을 다한
그들의 '작품'앞에
이렇게 까지 인간의 능력을 끌어 올리도록 신앙심을 품게한
신의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로마는 시선을 던지는 순간 1000이라는 숫자를 들어야 합니다.
왠만하면 천년전에 지은 건물이니깐요.
현재 우리 나라에서 천년전 유적은 신라말이나 고려초 유적입니다.
서울이든 경주이든 천년전 유적이 그렇게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을까요?
불국사는 박정희대통령 시대에 복원한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진품이 아니죠.
석굴암자체는 진품이지만 그것을 유리관안에 가두면서 심각한 손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콜롯세움은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망신창이겠지요.
경주에서도 수많은 문화유산을 가져다가 자기집 댓돌로 쓰고 빨래돌로 쓰고 했듯이
로마에서도 콜롯세움의 돌을 로마인들의 가져가는 바람에 콜롯세움의 원형은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로마인은 콜롯세움을 보수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가장 진품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세련되게 시멘트를 섞어서 보수한 우리 나라 문화 유산을 볼 때 마다
왠지 느꼈던 낯부끄러움의 실체가 어렴풋이 보였던 사례였습니다.
독일은 어땠을까요?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파리였을까요? 런던이었을까요? 로마? 피렌체?
프랑크푸르트는 아름다웠습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문화유산도 아니고,
천 년 이상 된 것도 아니었지만
나무 사이의 건물들은 자연 그 자체였습니다.
우린 건물 사이의 나무도 찾아보기 힘들죠?
아마 자연환경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지가 70프로인 우리 나라는 조금만 차를 타고 가면
등산할 곳이 있지만....
유럽은 알프스 근처의 도시를 제외하곤
대부분 평지에 있기 때문에
땅도 넓고, 나무도 그립다 보니 그런가 싶습니다.
그래도 부럽긴 부러웠습니다.
30층 호텔 창에서 내려다본 프랑크푸르트의 푸르름....
1층 호텔 식당 창가에 비친 녹색반의 독일의 거리....
독일의 밤거리에서 본
현대적 야광 조형물...
분수대...
벤치...
그리고 독일의 맥주 맛...
잊을 수 없습니다.
학생수 500명에 교사수 300명이 당연한 이태리의 고등학교!
전교생 성적표를 학교현관입구에 붙여놓고 있어서...
놀란 토끼눈으로 이게 뭐냐고 했더니,
뭐가 어떠냐고?
궁금한 자기 성적을 알려주는 것이고,
아무도 이태리에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
교사는 5년 계약직으로 5년마다 재계약을 하며,
일년중 5개월이 방학인데, 방학때도 당연히 월급이 나오며....
방학중엔 교사들이 다른 직업을 겸함을 허용한다는 사실.
신기한 사실은 5년마다 재계약을 해도
중간에 계약해제당한 교사는 없다는 것.
수업하는 교사, 행정전담교사, 담임전담교사 등
3가지 분야의 교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컴퓨터나 ICT와 관련해서는 우리보다 많이 뒤져 있지만,
그들의 작품들 하나하나에서 엿보이는
미술적 재능은 남달랐다는 사실....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났던 현지가이드는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습니다.
현대조형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에 유학온지 6년째...
손수 학비를 벌기위해
한국여행객이 오면 가이드를 하는데...
같이 공부하던 자기 친구들은 이미 한국으로 들어가
순수예술의 꿈을 접고
광고나 영화쪽에서 일하는데....
자기 혼자 남았다는 군요.
아직도 미술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다는
대한민국 젊은이였습니다.
이태리에서 만난 가이드는
로마고대사를 전공하고 있는 역사학도.
어느 나라 가이드보다
열정적으로 깊이있게 이태리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우리가 교사들이기에
더욱더 최선을 다 했다는 그 말!
그리고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가 다른 모습으로 뵙고 싶다는 그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우리 젊은이들이 있기에
우리 나라의 미래는 밝은가 봅니다.
한국의 날씨와 음식이
너무나 선선하고 맛있는 하루하루가 행복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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